[천가칼럼] 44/66 사이즈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미인들이 풍만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동양 미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당나라 양귀비가 항간에서'하얀 돼지'로 불릴 만큼 뚱뚱했다는 건 유명한 일이고,'모나리자'의 주인공 역시 최근 대두된 주장대로 출산 직후의 모습이라 해도 결코 날씬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중 하나로 '가느다란 허리(細腰)'가 꼽히긴 했어도 오랫동안 얼굴과 몸 전체에 보기 좋게 살이 붙어야 "부잣집 맏며느리 감" 내지 "복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욕이 돼버린 '달덩이같은 얼굴'이 칭찬이었음도 물론이다. 그러던 게 지금은 마를수록 좋다고 야단이다. 20대는 물론 초등학생과 중년부인까지 다이어트에 목을 맨다. 멀쩡한 여성까지 굶는 건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유행과 옷 매무새 탓이 커 보인다.

실제보다 퍼져 보이는 TV화면 탓에 뺄 수 있는 만큼 빼려는 여성 연예인의 몸매가 일반인의 기준처럼 된 데다 가늘고 긴 실루엣을 강조하는 패션 흐름이 더해져 말라깽이 광풍을 더한다는 얘기다. 지난 봄·여름엔 여기에 터무니없는 '44 사이즈'바람까지 불어 여성들을 괴롭혔다. 44, 55, 66은 여성복 사이즈. 55면 충분히 날씬하고 66이라야 보통 체격이다. 그런데 갑자기 뼈만 남은 정도라야 맞는 44가 뜨면서 55도 크다는 식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뭐든 지나치면 반작용이 생기는 법. 스페인의 한 패션쇼에서 저체중 모델의 출연을 금지시키고 영국의 톱디자이너 폴 스미스 역시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이어 국내에서도 44 사이즈 열풍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인과 영국의 움직임을 예로 들 것도 없다. 비정상적으로 깡마른 모델을 내세운 패션쇼나 광고는 젊은 여성들의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 요란한 유행에도 불구하고 실제 팔린 건 '55'와 '66'사이즈이고 그 결과 자연스레 44 사이즈가 퇴출되고 있다는 얘기가 반가운 건 그런 까닭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