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UN총장 사실상 확정] 선출과정 ‥ 美 입장 선회로 대세 장악

요란하지 않은 선거전략의 승리였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조용한 성격이 선거운동 과정에 그대로 투영됐고 노련한 외교관다운 전략이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반 장관의 말을 빌리면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도 유엔 사무총장이 되겠다는 꿈을 꾼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런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유엔 사무총장의 지역순환 관행에 따라 아시아에서 차기 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덕분이다.

더욱이 사무총장 출마 의지를 일찌감치 피력했던 홍석현 전 주미 대사가 작년 7월 낙마하면서 반 장관은 작년 9월 우리 정부가 추천하는 후보로 확정됐다.
그 뒤 반 장관은 2월14일 사무총장 입후보 사실을 발표할 때까지 잠행했다.

미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의 관계자들을 만나 의중을 타진했다.

"유엔 사무총장에 입후보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외교적 수사로 던지면서 반응을 떠보는 식이었다는 게 반 장관의 설명이다.사전탐색에 자신감을 얻은 반 장관은 선거전략으로 '조용한 운동(low-profile)'을 선택했다.

내부적으론 바빴다.

외교부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아프리카와 남미,덴마크,슬로바키아 등을 방문했다.노무현 대통령도 정상회담에 반 장관을 동행하며 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첫 걸림돌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지역순환보다는 능력이 우선"이라며 딴죽을 걸고 나왔다.

희소식이 날아든 건 지난 7월.조지 W 부시 대통령이 7월10일 "내가 알기로 유엔 사무총장은 전통적으로 지역을 순환한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같은 입장 변화에는 초지일관 아시아 후보만을 지지할 것이라는 중국의 영향력도 컸다. 이를 바탕으로 반 장관은 7월24일 열린 1차 예비투표에서 찬성 12표,반대 1표,기권 2표로 1위를 차지하면서 대세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미국이 반 장관을 지지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니었다.

볼튼 유엔 미 대사는 계속해서 '제3후보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나 휴가철이 끝나면서 미국의 분위기는 변했다.

내심 염두에 뒀던 챈홍치 주미 싱가포르대사가 출마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런 방침은 지난 9월14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반 장관에게 "당신이 훌륭한 후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행운을 빈다"고 격려했을 때 표면화됐다.

하지만 마지막 걸림돌이 있었다.

3차 투표 때까지 빠지지 않던 '반대표 1개'였다.

반대표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영국이나 프랑스라는 설이 있어 만만치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반대표를 던진 국가가 매번 달랐다는 점.이들의 요구사항을 잘만 파악하면 얼마든지 설득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런 설득은 주효했고 반 장관은 2일 열린 4차 투표에서 '찬성 14표,기권 1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사무총장 자리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변수는 남아 있다.

9일 안보리 본투표에서 정식으로 추천을 받아야 한다.

또 총회에서도 비준을 받아야 사무총장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다른 후보들이 줄사퇴해 본투표가 없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올 정도로 안보리 분위기는 좋다.또 안보리의 추천인사를 총회가 박수로 통과시킨 관례를 감안하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유엔 주변의 관측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