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아베의 실용외교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취임 후 2주 만에 국제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26일 내각 출범 후 아시아 외교 복원을 위해 한국과 중국 방문 가능성이 흘러나오면서 그의 움직임은 매스컴의 표적이 됐다.

국제 외교가에선 오는 11월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한·중 수뇌와 만날 것이란 예측이 많았으나 아베는 속전속결 방식을 택했다. 게다가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난 뒤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을 위해 서울공항에 도착한 9일 오전 북한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번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성급하지 않느냐는 국내 비판을 뒤로 하고 과감한 외교 행보를 보인 아베는 정상회담이 성공했다는 내부 평가를 바탕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외조부가 총리를 지냈고 부친이 외상을 지낸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 운좋게 총리까지 올랐다는 세간의 평가도 수그러들게 됐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파격적인 한·중 방문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1년6개월 만에 재개된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호혜 관계'를 구축해 양국 관계는 해빙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과는 작년 11월 이후 첫 정상회담을 열어 북한핵에 대해 공동 대응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북한이 아베의 한국 방문에 맞춰 핵실험을 한 것도 한·중·일 3국간 관계 정상화에 대한 초조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에 비해 극우 강경 인물로 낙인 찍혔던 아베는 취임하자마자 동아시아 3국간 꼬인 실타래를 먼저 풀어가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매파로 알려진 아베의 외교행보가 갖는 의미는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아베는 7월 초 펴낸 자서전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정치 철학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는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를 보면서 정치가의 꿈을 키워왔으며 그의 정신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보수''매파'등 세간의 평가는 문제될 게 없다는 사고도 조부로부터 배웠다고 털어 놓았다.

1950년대 후반 총리를 지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요괴''불사조'등으로 불렸던 자민당 우파의 '원조'였다.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대신으로 입각해 침략전쟁 수행에 앞장섰고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전쟁피해국들은 그의 행적에 몸을 떨었지만 한 역사학자는 "몸 하나로 두 번의 인생을 살았고,한 사람에게 몸이 두 개 있는 듯한 인물"로 평가했다.

기시는 1957년 총리로 선출된 뒤 패전 후 일본 총리중 처음으로 동남아를 두 차례나 방문해 아시아 중시 노선을 과시했다. 또 전후 총리로는 미국을 첫 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는 재임중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해 안보 동맹의 초석을 만들었고 경제대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아베의 이번 대담한 한·중 방문 외교도 일본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베의 몸속에 '거괴(巨魁)'로 불린 조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최인한 도쿄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