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브랜드를 키워라] 산학, 밀애 넘어 결혼 시대로…

세계는 지금 '인재(talented brain)전쟁' 중이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창조적인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고 유입하는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이런 역할의 중심축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기업과 산업계,사회가 바라는 인재 양성'이란 요구에 직면해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유수 대학들이 경영학과 공학,생명공학,의학 등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도 이 같은 요구의 반영인 셈이다.그러나 한국 대학의 '성적표'는 여전히 초라하다.

기업은 대학이 배출한 인력을 신뢰하지 않고,우수 인재는 쉴새없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최근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명문대학에는 국내 200개 4년제 대학 중 서울대(63위)만이 간신히 포함됐다.대학교육의 '창조적 파괴'가 절실한 이유인 것이다.

◆학문간 영역파괴 가속화

대학들이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연구과제)를 따내 수동적으로 산·학 협력을 맺던 전통적인 관계는 적어도 미국에선 파괴되기 시작했다.아예 기업의 요구와 수요를 예측하고 대학교육의 커리큘럼(강의 과목 및 스케줄)을 '디자인'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대학은 늘 연구기금과 기부금에 목말라하는 데다 졸업생을 우수 기업에 얼마나 취업시키느냐에 따라 대학의 평판이 달려있어서다.

때문에 기업은 자연스럽게 대학의 울타리 안으로 진출,학문 영역을 직접 창조하기도 하고 간부를 파견해 대학의 변화를 촉구한다.

IBM과 손잡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이나 UC버클리가 대표적인 경우다.

두 대학은 근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생산기업에서 솔루션과 서비스,컨설팅 공급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IBM으로부터 장학금 등을 지급받고 '서비스과학,경영과 공학'(SSME)이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조해냈다.

컴퓨터과학,공학,경영과학,경영전략 등 각기 쪼개져 있는 상이한 분야를 한데 묶어 기업이 고민하는 고객과 서비스 제공업체 간의 관계를 분석하겠다는 목적이다.

경영학석사(MBA) 과정이나 컴퓨터과학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들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는 '서비스 경영'이란 과목을 개설해 운영 중이며,UC버클리는 이번 가을학기부터 '서비스과학,경영,공학'이란 학위과정을 신설했다.

UC버클리는 IBM 간부를 자문위원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대학들도 보잉,마이크로소프트,크레딧스위스그룹,BMW AG 등과 함께 협력방안을 모색 중이다.

기업은 덜 준비된 인력대신 '맞춤형'인재를,대학은 연구기금과 생생한 비즈니스 영역을 끌어들이는 이른바 윈-윈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 지역산업에 부응하는 아이콘 개발

국내대학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학 특유의 아이콘을 찾는 게 그것이다.

올해 신설된 성균관대 '반도체학과'는 학생들이 대학교수와 삼성전자 차세대연구팀 연구원들로부터 이론과 실무교육을 받는다.

물론 학비는 삼성전자가 전액 부담한다.

연세대 원주캠퍼스도 내년부터 인근 하이닉스반도체와 협의해 관련 학과 과정을 신설한다.

이화여대는 내년부터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환경과 생태를 연구하는 대학원과정인 '에코과학부'를 신설한다.

서울대에서 스카우트한 최재천 석좌교수를 수장으로 동물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분석하는 동물정보통신학,생태계의 구조를 수학공식으로 풀어내는 에코모델링,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전염병을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통해 연구하는 생태역학 등의 과목을 포함시켰다.

숙명여대는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를 유치하고 있는 데다 궁중요리 연구기관인 한국음식연구원 등을 보유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최근 MBA 과정에서도 요식업 경영자 육성에 몰두하고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MBA 과정에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겠다는 포석이다.

영진전문대학과 한양여대는 교보자동차보험과 손잡고 지난 7월부터 'TM(텔레마케팅)전문가과정'을 개설,텔레마케팅 기술은 물론 손해보험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르치는 데 나섰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류지성 박사는 "산업 자체가 빠르게 융·복합화를 이루는 21세기에 대학이 전통적인 학문체계를 고수하는 대신 영역 간 벽을 허물고 학제 간 통합 연구를 위해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 내는 게 새로운 추세"라고 지적했다.류 박사는 "일부에서는 '대학의 기업화'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교육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미국 대학들도 기업처럼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국내 대학들은 기업과 지역산업에 초점을 맞춰 각자를 대표할 수 있는 나름의 '아이콘'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