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장들] 내집 마련ㆍ애들 공부ㆍ노후 준비까지… 錢錢긍긍

"10년 전 회사에 입사할 때는 큰부자는 아니더라도 웬만큼 노후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거의 포기 상태에요.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지요."종합상사에서 일하는 곽모 과장(37·서울 노원구)은 '현재로선 부자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외벌이 샐러리맨인 그는 월급받아 생활비 외에 주택 구입 자금과 자녀 교육비 대기도 벅차다.

곽 과장은 "80∼90년대에는 큰 돈 없이도 아파트를 분양받아 재산을 불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며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평당 분양가가 1300만원을 웃도는 만큼 목돈이 없으면 청약도 어렵다"고 했다.그는 "또 하나의 로또라는 판교 아파트만 해도 일반 직장인으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고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대박도 일부의 얘기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의 허리인 과장들이 빠듯한 살림살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많은 과장들은 신입사원 때는 회사 생활을 10년 정도 하면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좌절감이 크다고 하소연한다.한국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과장들의 41.6%가 현재 가장 큰 고민으로 '돈 문제'를 꼽았고 75.5%는 '지금 형편으로는 부자가 되기 힘들다'고 대답했다.

회사에 승부를 걸어서는 재산을 모으기 힘들다는 인식이 과장들 사이에 팽배하다는 의미다.

직장생활 13년차인 윤모 과장(40·서울 목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 학원비로 매달 150만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윤 과장은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지만 늘어나는 것은 회사와 나 자신에 대한 푸념뿐"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장모 과장(37·서울 영등포)의 경우 연초 1억6000만원을 빌려 3억2000만원짜리 집을 샀다.

직장생활 11년 만에 처음 장만한 '내 집'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아이가 중학교에 가기 전 강남으로 옮기고 싶지만 전세라도 제대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경영학)는 "직장생활의 반환점을 돈 과장급들은 '회사는 부자가 됐지만 열심히 일한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이로 인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고 업무보다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고금리 시절에는 퇴직금을 은행에 넣어두면 노후 걱정이 없었지만 지금은 이마저 힘들다"며 "과장급 샐러리맨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히 치솟는 집값은 과장들의 허탈감을 키우고 있다.

올초 과장으로 승진한 정모 과장(34)은 "내가 8년간 저축한 돈보다 서울 강남이나 목동에 집을 산 사람들이 1~2년간 번 돈이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일할 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많다.그는 "부동산 가격은 꼭 잡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집을 사지 않았다 값이 오르는 바람에 나만 손해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기획취재부=김수언·주용석·류시훈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