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며느리들 어학강사로 떴다


지난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의 지역아동센터인 해오름공부방. "헬로,헬로,핫춰 네임? 마이 네임 이즈 존…."

교실에 모인 초등학생 13명이 외국인 선생님 지휘에 맞춰 신나게 영어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선생님은 필리핀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파다 그랜다씨(31). 1999년 한국으로 시집와 현재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외국인 며느리'다. 일주일에 두 번 강의하고 집안살림까지 하느라 바빠졌지만 "잘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겨 기분이 너무 좋다"며 "엄마가 선생님이라며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고 활짝 웃었다.

이달 초부터 '외국인 며느리'들이 외국어 강사로 나선 거제시는 해오름 공부방 등 5곳을 원어민 어학교육시설로 지정했다. 정규학생수만 80여명.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출신 5명이 영어강사로,조선족과 한족 4명은 중국어 강사로 나섰다. 이들은 3개월간의 한글과 한국의 문화,교수기법 등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강사로 선발됐다. 시간당 3만원의 강사료도 지급된다.

거제시는 경남지역에서도 외국인 며느리가 가장 많은 곳. 농촌 총각이나 조선소 직원들과 국제결혼한 여성들이 모두 237명에 이른다. 김한겸 거제시장은 "지역 학생들의 영어교육을 지원하고 외국인 여성들이 자부심을 갖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며 "호응도가 워낙 좋아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한다.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전국에 약 7만명. 상당수가 농어촌 총각들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 유교적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농촌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적인 갈등을 많이 겪는 것도 사실. 하지만 이젠 교육여건이 열악한 농촌지역에서 외국어 교육을 담당하는 어엿한 '선생님'으로 변신하면서 지역사회의 핵심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는 물론 거제시가 처음은 아니다. 전남 담양군은 2003년부터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을 초등학교 방과후 영어교사로 채용하고 있다. 대졸이상 학력자 중 필기와 면접을 거쳐 강사를 선발,담양 용면초등학교 등 지역 내 14개 초등학교에서 활동 중이다. 현재 필리핀 출신 여성 9명이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웃 구례군과 곡성군 등도 지난해부터 이 제도 운영에 들어갔다.

담양군 여성복지과 김민지씨는 "외국인 며느리들의 활동이 가계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와의 관계증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영어교육 기회를 갖지 못했던 농촌 저소득 가정 학생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외국인과 처음 말을 해봤다는 거제초등학교 반정민양(2학년)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무서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좋다"며 "열심히 배워 동생들에게 영어노래를 가르쳐줄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해오름공부방 선생님인 파다씨는 "학생들이 외국인과 대화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실력을 기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것"이라며 "한국에 있는 외국인 여성들이 이제 '한국사람'으로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제=김태현·담양=최성국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