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中企 신용대출 '급제동'

우리은행 구미지점은 지난 5월 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 사고로 곤욕을 치렀다.

경북 칠곡에 있는 정화장치 제조업체인 E사에 담보나 보증 없이 기술력만으로 10억원을 신용대출해줬다가 고스란히 떼인 것. E사는 대출받은 이후 갑작스러운 수주공사 지연으로 자금 상황이 악화되면서 6월 화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우리은행 담당자는 "E사가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BB등급의 기술평가 등급을 받았고 대기업 L사로부터 여러개의 주문을 받아놔 이 같은 돌발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기술평가서를 활용한 중소기업 신용대출에 급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떠밀려 상반기 중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크게 늘렸던 시중은행들이 7월 이후 이를 대폭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보의 기술평가인증서를 근거로 발행한 신용대출은 4,5,6월 각각 200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활기를 띠었으나 7월 91억원,8월 32억원,9월 23억원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6개월간 1027억원에 달했던 대출금액은 7∼9월 석 달간 146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시중은행들의 중기 신용대출이 이처럼 급감한 것은 기술평가서를 기초로 한 대출 심사 기준 강화에서 비롯됐다. 올해 초 중소기업 전용 대출상품인 '하이테크론'을 출시한 우리은행은 9월부터 신용대출을 위해 허용하는 기술평가인증서 등급을 기존 BB등급에서 BBB등급으로 상향 조정했다.

과거 AAA,AA,A,BBB,BB 등 5단계로 허용하던 대출 심사를 위한 기술등급 기준이 AAA,AA,A,BBB 등 4단계로 줄어든 셈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최근 중기 신용대출 사고가 3건 연속 발생하자 심사 기준을 높였다"며 "선도 은행들이 중기 대출에 앞장서야겠지만 실행에선 상당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이와 함께 8월부터 산업자원부가 기업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등과 담보나 보증 없이 기술평가만 받고 신용대출을 해주는 '혁신형 중소기업기술금융 지원사업'도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현재 170여건의 신청이 접수됐지만 최종 대출 심사를 통과한 중소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까닭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처음 생긴 제도이다 보니 시행착오로 당초보다 심사기간이 지연되며 대출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면서도 "은행들이 하반기 들어 위험 관리에 부쩍 신경쓰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기존 대출 관행을 무시하고 정부 정책만 좇다보면 과거 프라이머리CBO와 같은 총체적 부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움츠리기는 오히려 시장 조정을 통해 제도가 올바르게 자리잡아가고 있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