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규제 강행 논란] 10차례 똑같은 회의만…TF팀 "우린 들러리였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장선진화 TF'에 참여하고 있는 법무법인 율촌의 윤세리 변호사는 지난달 23일 마지막 회의에서 "넉 달여 동안 총 10차례나 회의를 열었지만 똑같은 얘기만 하고,또 듣고 가는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얼굴을 붉힐 정도로 난상토론을 벌였지만 팀원들 간의 이견을 거의 좁히지 못한 채 서로의 간극만 확인했다는 얘기였다.

순환출자 규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는 김진방 인하대 교수가 "순환출자 규제는 사전 규제가 아니라 모두가 지켜야 할 룰"이라고 주장하자 산업연구원의 고동수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새롭게 영향을 미친다면 룰이 아니라 규제며,실제 순환출자 규제는 많은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되받았다.또 윤 변호사가 "순환출자 도입으로 기존 출자분에 대한 강제매각 명령이나 의결권 제한이 이뤄질 경우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자 이의영 군산대 교수는 "상호출자금지 도입도 순환출자 도입과 유사한 것인데,과거 상호출자금지 도입시에는 위헌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반론을 펴기도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가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 도입에는 이견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며 순환출자 규제를 강행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TF를 들러리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순환출자 규제 논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지막 10차 회의록을 공개한다.
[ 공정위 마지막 10차회의 무슨 얘기 오갔나 ]

▷김진방(인하대 교수)=순환출자는 기업들이 법적으로 금지된 상호출자를 회피하려다 보니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순환출자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상호출자나 자사주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순환출자는 2000~2001년에 발생했으며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는 무관하다. 순환출자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승철(전경련 상무)=순환출자로 인해 우리 경제에서 피해를 본 집단이 있는가? 혹시 있다 하더라도 소송 등 사후규제 장치로 피해를 구제할 수 있지 않은가?▷김진방=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제철 주식을 기아차가 인수해 순환출자를 형성한 경우 현대차 주주들은 현대제철 성장으로 받을 수 있는 배당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윤창현(시립대 교수)=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서 현대제철을 고리로 하는 순환출자를 놓고 '기아차 주주의 이익은 현대차 주주의 손해'라는 제로섬 게임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윤세리(변호사)=사전 방어장치라는 명목으로 순환출자 규제를 도입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출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저인망식 규제가 된다. 이는 과잉 규제다.▷김호원(산자부 국장)='더 다이너스티'의 저자는 개도국에서 오너 경영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삼성전자 성공요인으로 이건희 회장의 예지력과 판단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지배가 나쁘다고만 할 수 있나?

▷김진방=우리나라에는 가족 기업이 거의 없으며 특히 대기업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4~5%로 가족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윤창현=그렇다면 지분율이 30~40%면 문제가 없는가?

▷김진방=경영을 잘 한다면 보유 지분율은 중요하지 않다.

▷한철수(공정위 국장)=경영을 잘못한 경우 지배주주의 지분이 많으면 지배주주가 피해를 감수하지만 지분이 적으면 다른 피해자들이 양산된다.

▷고동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해관계자(주주)는 강요가 아니라 자기판단에 따라 시장에 참여한 것이므로 이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배주주의 지분이 많든 적든 모든 주주들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

▷윤세리=지배주주의 지분 문제는 공정거래법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고동수=현대차의 순환출자가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만을 위해 형성된 것이라면 현대차 소액주주가 소송을 제기해서 해결할 문제이지만 모든 회사의 출자를 사전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징벌적 사후규제가 바람직하다.

▷윤세리=순환출자 규제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법률적으로 순환출자를 실현 가능한 규제수단을 찾기 힘들다. 처분명령 의결권 제한 등 규제방식에 법적인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김호원=과거에도 순환출자를 규제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

▷윤창현=과거에는 순환출자에 대해 언급이 없다가 출총제가 폐지되는 시점에 왜 순환출자를 문제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동규(공정위 처장)=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할 당시 출총제를 3년간 운용하다가 지배구조 등이 개선되면 조건없이 폐지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미진한 수준으로 판단해 순환출자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노대래(재경부 국장)=규제는 필요성,당위성도 있어야 하지만 구체적 실현 가능성과 기업이 감당해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어야 정책화가 가능한 것 아닌가. 전경련이 언급한 여러가지 기업규제 장치들이 있는 상황에서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은 과잉규제라고 생각한다. 분식회계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빈번했으나 현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업과 환경이 크게 변화한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김호원=10개의 그룹 중 6개 그룹이 순환출자를 악의적으로 활용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4개 그룹에까지 일괄 규제를 하는 것은 과잉규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이 순환출자 규제를 공언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조일훈·유창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