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승부사' 서봉수 ‥ 와일드카드로 출전 세계바둑 4강

"회광반조(回光返照:해가 지기 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춘다)라는 말이 있지요.

제 바둑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이 가장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천운이 따라준다면 우승으로 40년 바둑인생의 후반부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습니다."

'잡초류' '토종 된장바둑' '반상의 야전사령관' 등 다양한 별칭으로 올드팬들에게 친숙한 서봉수 9단(53)이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당당히 4강에 올라 승부사로서의 투혼을 과시하고 있다.

주최 측 와일드카드로 어렵사리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서 9단은 16강전에서 천야오예 5단을 제압한 뒤 지난 9일 벌어진 8강전에선 왕야오 6단을 꺾는 등 중국의 신예강자들을 연파하며 '중국기사 킬러'로서의 면모도 유감 없이 발휘했다.서 9단의 준결승전(3번기) 상대도 중국 기사인 창하오 9단.그는 "국내 기사들보다 중국 기사들과 두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993년 잉창치배 우승과 97년 진로배 9연승의 신화를 쌓으며 한국 바둑 4천왕의 한사람으로 불렸던 서봉수지만 언제부터인가 장강의 뒷물결처럼 도도한 후배들의 등쌀에 잊혀져간 인물이 되는 듯 보였다.

아내와의 갑작스러운 이혼도 승부만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그에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하지만 2004년 10월 지금의 베트남 신부를 아내로 맞으며 바둑과 인생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서 9단은 당시 "나 하나만 믿고 이국 땅으로 시집온 신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바둑을 둬 승부사로서의 진면목을 다시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최근 술도 줄이고 평소 안 하던 운동(골프)에도 열심인 서봉수.바둑스타일에서도 전투에 강하면서 치열한 전성기 시절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쉰을 넘긴 나이에도 결코 식지 않는 그의 잡초 같은 투혼에 바둑팬들은 박수를 보낸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