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터치 뮤지엄

'정교하다,화려하다,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다.''백제금동대향로'와 '신라금관'을 못 본 사람에겐 그 어떤 묘사도 가슴에 와닿기 어렵다. 뭐든 직접 보지 않으면 제 생각,제 느낌을 갖기 힘드니까. 느낌이 없으면 상상도 불가능하니 형상이 떠오를리 없고,형상이 떠오르지 않는데 감동이 생길리 만무하다.

시각장애인에겐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체험할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그러나 보지는 못해도 만져볼 수 있다면? 금동향로의 섬세한 돋을새김(양각),금관의 찰랑거리는 장식이 손끝에 닿는 순간 말로만 듣던 문화재의 섬세함과 탁월함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닌 실체가 될 수 있으리라. 국립전주박물관에 마련된 '터치 뮤지엄'은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 곳이다. 전시작은 백제금동대향로,신라금관,말탄사람 토기,백제 무늬벽돌 등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 170여점을 진짜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만든 복제품. 돌아가는 둥근테이블에 배치해놓음으로써 좌석에 앉아 어루만져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시각장애인들이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실물도 만지고 점자책도 읽으면서 충분히 이해하도록 조성됐다. 방학 중엔 어린이와 일반시민 모두에게 개방한다. '손대지 마시오. 눈으로만 보시오'라고 쓰인 박물관에서 얻기 힘든 자유로운 체험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전주박물관은 이 밖에도 '전라북도 역사문물전'이라는 이름 아래 14개 시·군 특별전을 기획했다. 고창·남원·부안·진안·군산에 이어 이번엔 '정읍전'을 개최,정읍시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출토 유물과 동학 자료까지 전시한다. 국립 지방박물관의 정체성 확립 노력의 일환이다. 박물관의 기능은 유물의 수집 보존 전시는 물론 연구와 사회교육 역할까지 다양하다. 지방박물관의 경우 문화적 구심체로서 지역민의 참가와 체험기회 확대가 중요하다. 소수자와 어린이를 위한 넉넉한 배려가 있는 세상이야말로 희망을 낳는다. 전주박물관의 터치뮤지엄이 규모에 관계없이 빛나는 이유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