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차라리 레이더를 바꿔라

경북 포항의 구만리는 드넓은 해안가에 바람이 세기로 이름난 곳이다.

얼마전 이곳에 한 중소기업이 풍력발전소를 설립하겠다는 투자계획을 포항시에 제출했다.해상에 수십기의 풍력발전기를 건립해 신재생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것.하지만 이 계획은 인근 공군 부대의 반대로 무산됐다.

풍력발전기 날개가 공군 레이더에 '적기'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경북지역 모든 해안가의 풍속을 재며 발전소 입지를 결정했던 업체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첨단을 달리는 군 레이더가 해상에 고정돼 있는 구조물을 움직이는 항공기로 오인하다니….

기업이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다.

흔해 빠진 '규제 타령'을 빌리지 않더라도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도처에 널려 있다.문제는 이런 장애물을 예기치 않은 순간과 장소에서 맞닥뜨린다는 것.또 하나,사전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대체 공군이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문제삼고 나올 줄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규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피할 겨를도 주지않고 주저앉는 살얼음판처럼 예고없이 모든 것을 무위로 돌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를 실행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10만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하자.용케 10만평의 부지를 물색해 중앙정부나 해당 지방자치단체를 찾아가더라도 투자의 걸림돌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일은 오로지 해당 기업의 몫이다.

물론 지자체 건축과에선 건축허가,도시개발과에선 도시관리계획과 배수시설을,지역경제과에선 조경과 가로수 문제 등을 다룬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안내해주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

여기에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중앙정부의 각종 개발규제들이 더해지면 웬만한 공무원들은 무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출자총액제한처럼 빤히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규제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출총제 적용대상을 축소한다고는 하지만,출총제의 올가미는 끝내 없어지지 않았다.

투자를 늘리는 순간 어김없이 다시 걸려드는 구조다.

이처럼 기업투자 환경이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온갖 규제장치들이 온존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서 경제계 일각에선 차라리 '규제사(規制士)'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투자에 수반되는 온갖 걸림돌을 미리 찾아내 타당성과 실행가능성을 분석하고 컨설팅까지 제공하는 서비스직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파트 공사로 치면 시공사가 나서기 전까지 모든 인·허가 작업을 완료해두는 시행사의 개념과 비슷하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현 단계에서 '규제사'로 활약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다.

계약 투자 등의 법률 행위에 대한 상담이나 문서 작성은 변호사만 할 수 있다나….

그래서 논의는 다시 원점이다.아무래도 포항의 풍력발전업체는 우리 공군이 성능 좋은 새 레이더 시스템을 장만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일훈 산업부 차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