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15) 서울 신영동 사랑의 선교수사회 ‥ 헐벗고 굶주린 이들 모두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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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요셉.
올해 45세인 그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다.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20년째 누워만 있다.
밥 먹고 물마시는 일,대소변 해결부터 가려운 곳을 긁는 것까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굴을 다치지 않아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점.필요한 것이 있으면 입에 문 막대기로 벽에 붙은 벨을 눌러 사람을 부르면 된다.그가 부를 때 달려가는 사람은 바로 함께 생활하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도자들이다.
세검정에서 멀지 않은 서울 신영동 언덕배기 한국관구 서울 본원.골목 끝의 아담한 주택에 둥지를 튼 수도원 대문 옆에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라고 쓴 낡은 현판에 'I thirst'라는 영어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내가 목마르다." 이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숨을 거두기 직전 했던 말이다."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수도회는 바로 이 '목마르다'는 예수의 말씀에서 비롯한다.
사람의 몸으로 온 하느님의 외아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육신의 목마름에 연연했겠는가.예수의 갈증은 자기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헐벗고 굶주린 사람,마땅히 사랑받고 구원받아야 할 모든 이가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목마름이다.
1948년 인도 콜카타에서 이 수도회를 창설한 마더 테레사 수녀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켜 "고통이란 모습 아래 숨어계신 예수님"이라고 했다.
대문 안쪽의 아담한 3층 건물이 그 '예수님'들의 집이다.
집에 들어서면 현관에 마더 테레사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안쪽으로는 수도회의 사무실이자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하는 작은 방과 주방이 마주하고 있다.
여기를 지나 문턱을 넘으면 나오는 큰 방이 노숙자,행려자 등으로 거리를 떠돌다 수도자들을 만나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생활공간이다.
큰방의 오른쪽 한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서자 요셉씨가 얼굴만 내놓은 채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원장 노성열 수사(50)가 "컨디션이 어때?"하고 묻자 요셉씨는 기자를 보더니 "모든 게 다 불편해"라며 노 수사에게 엄살을 떤다.
그렇게 오래 누워 지낸 사람답지 않게 표정이 밝다.
노 수사와는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다.
아침마다 욕창이 난 그의 몸을 씻기고 말리고 거즈를 붙여주는 데다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처지이니 무슨 거리낌이 있을까.
"우리는 의사들도 인정하는 욕창 전문가예요.
매일 아침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치료하다 보니 전문가가 된 것이죠."
신영동 수도원에는 요셉씨를 포함해 척추마비,지체장애,정신박약,하반신마비,당뇨 등 다양한 병증을 지닌 12명이 수사들의 보살핌 속에 생활한다.
1977년 서울 삼선교에서 시작한 이 수도회의 한국인 회원은 모두 22명.11명은 국내,나머지는 인도 캄보디아 필리핀에 파견돼 있고 신영동 본원에는 인도에서 온 수사 2명과 한국인 수사 4명 등 6명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아침마다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식사 수발과 청소,빨래,병원 나들이 등으로 수사들은 쉴 틈이 없다.
일주일에 두 번은 거리와 시장 등을 돌며 다친 사람,버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가난한 이 중의 가난한 이를 위하는 일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우리는 사랑이라는 그물로 가난한 이를 낚는 어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하루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봉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노 수사는 "인간의 차원에서 일한다면 지치게 마련이지만 영성을 바탕으로 일하면 현실적인 고통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수도자라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는 몇 번씩이고 보따리를 쌌을 겁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다 서른한 살에 수도회에 들어와 여러 번 시련을 겪었지요.
그럴 때마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그분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다른 길로 갔을지 모르지요.
남 모르는 기쁨과 평화가 수도자에게 주어지는 특은(特恩)인데 그런 체험이 없으면 수도생활을 중단하기 십상이지요."
오후 5시.3층의 경당에서 수도자들이 저녁기도를 드리기에 앞서 1층 큰방의 가족들이 먼저 저녁기도를 드린다.
그 사이에 수도자들은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시간이 되면 경당으로 올라간다.
서너 평 남짓한 경당은 ㅅ자형 지붕 밑 다락방이다.
가장자리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움직일 수 있다.
십자고상 옆에도 '목마름의 영성'을 상징하듯 '목마르다'라고 새겨져 있다.
저녁기도가 끝나면 식사 시간.큰방에 밥상이 두 줄로 차려지고 환자들과 수사들이 함께 만찬을 즐긴다.
메뉴는 밥과 국,서너 가지 반찬 등으로 단출하지만 식사 시간은 '목마름'을 해결하는 또 한번의 자리다.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데다 치아마저 부실해 제대로 씹을 수 없는 환자를 위해 다른 가족이 그의 반찬을 가위로 일일이 잘라 준다.
가난한 이가 가난한 이를 돕는 현장이다.
"목마름의 영성은 모든 사람을 구원받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구 살던 인생들이 이곳에 와서 서로 돕고 나누고 참여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죠."
노 수사의 말 속에서 영적 충만감이 느껴진다.수도복이 없는 수도회,하지만 그 가슴에 단 십자가가 유난히 크고 빛나 보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올해 45세인 그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할 수 없다.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가 돼 20년째 누워만 있다.
밥 먹고 물마시는 일,대소변 해결부터 가려운 곳을 긁는 것까지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굴을 다치지 않아서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점.필요한 것이 있으면 입에 문 막대기로 벽에 붙은 벨을 눌러 사람을 부르면 된다.그가 부를 때 달려가는 사람은 바로 함께 생활하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도자들이다.
세검정에서 멀지 않은 서울 신영동 언덕배기 한국관구 서울 본원.골목 끝의 아담한 주택에 둥지를 튼 수도원 대문 옆에는 '사랑의 선교 수사회'라고 쓴 낡은 현판에 'I thirst'라는 영어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내가 목마르다." 이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숨을 거두기 직전 했던 말이다."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수도회는 바로 이 '목마르다'는 예수의 말씀에서 비롯한다.
사람의 몸으로 온 하느님의 외아들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육신의 목마름에 연연했겠는가.예수의 갈증은 자기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헐벗고 굶주린 사람,마땅히 사랑받고 구원받아야 할 모든 이가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목마름이다.
1948년 인도 콜카타에서 이 수도회를 창설한 마더 테레사 수녀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켜 "고통이란 모습 아래 숨어계신 예수님"이라고 했다.
대문 안쪽의 아담한 3층 건물이 그 '예수님'들의 집이다.
집에 들어서면 현관에 마더 테레사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안쪽으로는 수도회의 사무실이자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하는 작은 방과 주방이 마주하고 있다.
여기를 지나 문턱을 넘으면 나오는 큰 방이 노숙자,행려자 등으로 거리를 떠돌다 수도자들을 만나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의 생활공간이다.
큰방의 오른쪽 한구석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서자 요셉씨가 얼굴만 내놓은 채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원장 노성열 수사(50)가 "컨디션이 어때?"하고 묻자 요셉씨는 기자를 보더니 "모든 게 다 불편해"라며 노 수사에게 엄살을 떤다.
그렇게 오래 누워 지낸 사람답지 않게 표정이 밝다.
노 수사와는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다.
아침마다 욕창이 난 그의 몸을 씻기고 말리고 거즈를 붙여주는 데다 대소변까지 받아내는 처지이니 무슨 거리낌이 있을까.
"우리는 의사들도 인정하는 욕창 전문가예요.
매일 아침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치료하다 보니 전문가가 된 것이죠."
신영동 수도원에는 요셉씨를 포함해 척추마비,지체장애,정신박약,하반신마비,당뇨 등 다양한 병증을 지닌 12명이 수사들의 보살핌 속에 생활한다.
1977년 서울 삼선교에서 시작한 이 수도회의 한국인 회원은 모두 22명.11명은 국내,나머지는 인도 캄보디아 필리핀에 파견돼 있고 신영동 본원에는 인도에서 온 수사 2명과 한국인 수사 4명 등 6명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아침마다 환자들을 목욕시키고 식사 수발과 청소,빨래,병원 나들이 등으로 수사들은 쉴 틈이 없다.
일주일에 두 번은 거리와 시장 등을 돌며 다친 사람,버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가난한 이 중의 가난한 이를 위하는 일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우리는 사랑이라는 그물로 가난한 이를 낚는 어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하루이틀이 아니라 평생을 봉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터.노 수사는 "인간의 차원에서 일한다면 지치게 마련이지만 영성을 바탕으로 일하면 현실적인 고통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수도자라면 누구나 마음 속으로는 몇 번씩이고 보따리를 쌌을 겁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다 서른한 살에 수도회에 들어와 여러 번 시련을 겪었지요.
그럴 때마다 하느님이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그분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다른 길로 갔을지 모르지요.
남 모르는 기쁨과 평화가 수도자에게 주어지는 특은(特恩)인데 그런 체험이 없으면 수도생활을 중단하기 십상이지요."
오후 5시.3층의 경당에서 수도자들이 저녁기도를 드리기에 앞서 1층 큰방의 가족들이 먼저 저녁기도를 드린다.
그 사이에 수도자들은 봉사자들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고,시간이 되면 경당으로 올라간다.
서너 평 남짓한 경당은 ㅅ자형 지붕 밑 다락방이다.
가장자리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움직일 수 있다.
십자고상 옆에도 '목마름의 영성'을 상징하듯 '목마르다'라고 새겨져 있다.
저녁기도가 끝나면 식사 시간.큰방에 밥상이 두 줄로 차려지고 환자들과 수사들이 함께 만찬을 즐긴다.
메뉴는 밥과 국,서너 가지 반찬 등으로 단출하지만 식사 시간은 '목마름'을 해결하는 또 한번의 자리다.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한 데다 치아마저 부실해 제대로 씹을 수 없는 환자를 위해 다른 가족이 그의 반찬을 가위로 일일이 잘라 준다.
가난한 이가 가난한 이를 돕는 현장이다.
"목마름의 영성은 모든 사람을 구원받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구 살던 인생들이 이곳에 와서 서로 돕고 나누고 참여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더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죠."
노 수사의 말 속에서 영적 충만감이 느껴진다.수도복이 없는 수도회,하지만 그 가슴에 단 십자가가 유난히 크고 빛나 보인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