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12월 주인은 '나'‥金在祐 <아주그룹 부회장>

金 在 祐 < 아주그룹 부회장 · kjwoo@aju.co.kr >

어느새 달력이 덩그러니 마지막 한 장만 남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황소걸음 같던 시간들이 마치 마지막 탑승 시간을 알리는 듯 빠르게 느껴진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다가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기(知己)들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어야 하고,수출 일선에서 고락을 같이 했던 옛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기쁨은 12월이 아니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다. 그래서 12월은 결코 평탄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의 한가운데서 잠시나마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성(自省)의 순간이기도 하다.

지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치 정든 사람과 헤어지는 것처럼 아쉽고 쓸쓸하다. 흔히 이맘 때면 송구영신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나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는 해를 보내는 것도 그저 세월이 다가오고 지나가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보내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보내고 받아들이는' 주체가 나 자신이어야 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도 나 스스로 그 시간들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12월은 연중 어느 때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연초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도 많다. 기회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루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정작 나 자신도 버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보라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쳐다 본다"는 옛 현인(賢人)들의 지혜를 머리로만 알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몇몇 뜻한 대로 이뤄진 일들과 단단히 마음 먹고 추진하려던 과제들은 내년으로 가져 가야지' 하고 안락한 반성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모자란다.

이제는 새해를 적극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누구나 변화를 외치고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왜 변화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화두(話頭)가 된 것일까? 격변의 시대란 내일이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기 때문에 지난날의 방식으로 맞이할 수 없다는 뜻일 게다. 내가 나의 주인으로서 2007년을 맞이하려면 12월은 분명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

50년 전,독일 사람들의 자긍심을 되찾아 주었던 제프 헤르베르거 국가대표 축구 감독의 '경기 후는 경기 전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또 다른 경기의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12월은 연중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시간 경영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