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게임산업] (1) 흔들리는 '온라인 종주국'..'온라인 최강' 남은시간은 1~2년뿐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이 터진 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관련 사업자들은 철퇴를 맞았다.수만개 성인 게임장이 문을 닫았고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이 수사를 받았다.

파문은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사고는 아케이드게임이 쳤는데 '세계 최강'이라는 온라인게임마저 비난을 받고 있다.게임을 '차세대 유망 산업'이라고 부르짖던 정부는 규제 강화에 여념이 없다.

해외에서는 비디오게임 PC게임에 주력해온 업체들이 앞다퉈 '게임 온라인화'를 통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은 어디로 가는가.현재 처한 위협과 해외 시장 개척 노력,대처 방안 등을 시리즈로 점검한다.


지난 8월 터진 바다이야기 사태는 게임산업 정책 방향을 확 바꿔 놓았다.

게임산업이 유망하다며 앞다퉈 지원 방안을 내놓았던 문화관광부 정보통신부 등은 파문이 재발하지 않도록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정부는 지난달 게임물등급위원회 설립을 포함한 '사행성 게임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게임 내용을 철저히 심의해 사행성 요소가 있는 게임에 대해서는 아예 등급을 매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게임산업을 관장하는 문화관광부는 현재는 규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대책에 '단속으로 인한 부작용 예방 조치가 미흡했다'고 시인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대세는 게임산업 '육성'이 아니라 '규제'다.

이와 관련,문화관광부 게임산업팀 조현래 과장은 "(규제 강화가) 온라인게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며 "그런 논의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는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모든 게임을 '도박'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 마케팅을 적극 펼치기 어렵다"며 "연말께로 잡았던 신작 출시 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김영만 회장은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진 후 어디 가서 게임회사 사장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게임산업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게임성'과 '도박성'은 엄연히 다른데 규제 일변도로 가다 보면 이를 혼동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세계 최강인 온라인게임마저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넥슨재팬의 데이비드 리 대표는 "일본 미국 중국 등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며 "온라인게임에 관한 한 지금은 한국이 최고지만 이런 상태로 가면 1,2년 후엔 양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윈디소프트 이한창 사장도 "한국이 세계 최고인 산업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느냐"고 반문하며 "한국 온라인게임이 5년 후,10년 후에도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 2004년 정부가 '게임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게임산업이 앞으로 수백만,수천만명을 먹여 살릴 것으로 보고 다양한 육성책을 시행하고 있다.

외국 업체가 중국에 단독으로 출자해 게임회사를 설립하지 못하게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때문인지 중국 온라인게임 상위 10위를 휩쓸었던 한국 게임은 최근 수년 새 하나씩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중국 게임이 빈 자리를 채웠다.

세계 비디오게임을 주도하는 일본과 미국도 최근 온라인게임에 부쩍 열을 올리는 추세다.

엔씨소프트 일본 법인인 엔씨재팬의 김택헌 사장은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일본 정부도 온라인게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온라인게임을 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계에서는 '온라인게임 종주국'으로서 우리 업체끼리 경쟁하던 시기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넥슨재팬 데이비드 리 대표는 "막연히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한국 업체가 특별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본 등 비디오게임 강자들이 온라인게임 시장에 뛰어들면서 플랫폼 경쟁도 볼 만해졌다.

한국이 주도하는 온라인게임은 PC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나 일본 소니가 주도하는 비디오게임은 콘솔 기반이다.

콘솔에 온라인 기능을 더하는 쪽에 힘이 실리면 한국은 궁지로 몰릴 수 있다.

콘솔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PS3)',MS의 '엑스박스360',닌텐도의 '위(Wii)' 등은 네트워크 기능이 강화돼 온라인게임과 비슷해지고 있다.

전설적인 온라인게임 '울티마온라인' 개발자인 엔씨오스틴의 리처드 개리엇은 "10년 후 어떤 플랫폼이 주도하게 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게임 플랫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어느 나라보다 빨리 보급된 덕에 온라인게임이 일찍 꽃을 피웠다.NHN 남궁훈 이사는 "지금 게임산업에서는 글로벌 경쟁과 함께 플랫폼 경쟁,국가 간 인프라 경쟁 등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며 "지금은 한국이 선점한 온라인게임의 우위를 지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