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출총제도 모자라 準수사권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예고될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17일 공개하자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기로 한 것도 모자라 공정위가 준(準)수사권까지 가지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출총제 적용 대상이 총자산 6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서 2조원 이상 기업으로 바뀌면서 출총제 대상이 아니던 기업들까지 줄줄이 출총제 적용을 받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정위가 사실상의 수사권한과 규제범위를 강화하는 조항들을 대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공정위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기업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겠다는 시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검찰인가"

재계가 개정안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행정기관인 공정위가 검찰과 같은 수사권한을 가지려고 한다는 점이다.금융거래정보요구권 상설화가 대표적.금융거래정보요구권은 1999년 외환위기 당시 그룹사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를 막기 위해 3년간 일시적으로 공정위에 부여한 권한이다.


공정위는 이 권한을 2001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연장하더니 이번엔 2007년 권한 일몰을 앞두고 아예 법을 상설화하겠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당내부거래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에 다른 통제장치들이 많이 도입됐다"며 "행정기관인 공정위가 기업들의 계좌를 낱낱이 조사할 권리를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강력한 사법적 권리인 만큼 이 권한을 공정위에 '일시적으로' 부여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가지면 기업들은 불안해서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다"며 "문제가 있으면 검찰에 고발해 정식으로 영장을 받아 조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기업 불확실성 더 커진다현장 조사시 사무실 자료 물건 등에 대한 봉인조치 권한 도입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이는 사실상 공정위가 기업에 대한 수사권을 갖기 위한 중간 단계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1998년 이후 공정위로부터 조사받은 4500여개 기업 중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한 사례는 9개 기업에 불과했다"며 "미미한 경우를 내세워 공정위가 강제조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또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재계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그래도 환율 하락과 불안정한 유가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언제,어떻게 공정거래법에 걸릴지 모르는 살얼음판까지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중복규제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같은 행위에 대해 2중 3중의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특히 부당 내부거래의 경우 이미 시장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통제 장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품 및 용역의 내부거래에 대한 이사회 의결 및 공시 △계좌추적권 상설화 △조사 방해에 대한 이행강제금 도입 등 전방위적인 규제를 신설하는 건 공정위의 권한을 늘리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게 재계의 인식이다.

특히 대규모 기업집단 정보공개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부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전경련 관계자는 "공정위가 매년 발표해온 재벌 총수들의 지분율 구조는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적대적 M&A 공격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소지가 많아 위헌 시비가 제기된 상태"라며 "이를 합법화하려는 건 대기업 집단에 대한 공정위의 영향력을 놓치기 싫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송종현·유창재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