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尹暢賢 <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

얘기 하나. 의사에게 아이를 업은 한 엄마가 찾아온다. "얘가 어디가 좀 안 좋은 것 같은데요." 의사는 경과와 증상을 물어본 뒤 아이 신체의 여러 부위를 직접 체크해 보고 청진기도 대본다. 한참을 진단해 본 후 결론을 내린다. "큰 이상은 없고 약간 허약해진 것 같으니 맛있는 것 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하며 엄마는 아이를 업고 그냥 나간다. 얘기 둘. "이거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가끔 있는 회식자리에 주방장 혹은 음식점 주인이 웃음 띤 얼굴로 음식을 가져오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서비스'는 곧 '공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의사의 머리속에서는 전문의를 취득하고 그 이후 수많은 세월 동안 임상경험을 통해 얻은 엄청난 양의 지식과 경험의 데이터베이스가 작동했다. 만일 컴퓨터였다면 하드디스크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냈을 것이다. 가능한 병명과 증상을 모두 체크한 후에 나온 "이상 없음"이라는 결론은 값진 결론이다.

그렇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면서 그 얘기 해주었다고 돈을 받으면 그 의사는 환영받기 힘들 것이다. 특히 평범한 동네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개업의라면 그는 돈만 아는 수전노(守錢奴) 정도로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경제교과서를 보면 재화(goods)와 용역(service)은 분명히 가치 있는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상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공짜'라는 말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서비스는 무게나 부피가 별로 안 나간다. 그러나 서비스 안에는 엄청난 지식과 정보가 녹아있는 경우가 많다. 잘 만들어진 간단한 계약서 한 장 덕분에 몇십억원의 손실을 방지하게 될 수도 있고 몇 페이지 안 되는 전략보고서 덕분에 기업이 승승장구(乘勝長驅)할 수도 있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큰 질병을 조기에 발견해 값진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서비스라는 상품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이상할 정도로 인색하다. 지식과 정보에 대해서는 '밥 한번 먹으면 되지, 돈은 무슨 돈이냐'라는 자세가 일반적이다. 단적인 예가 "책 도둑놈은 도둑이 아니다"라고들 했다는 조상님들의 얘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 복사도 여전하고 소프트웨어 복제도 심하다. 이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 저자나 프로그래머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다.

그러나 나 하나쯤이야 하며 복사(複寫)와 복제(複製)가 계속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좋은 책과 소프트웨어의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묵직한 내용보다는 가볍고 말초적인 내용을 담은 책들이 범람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서비스산업 경쟁력(競爭力)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제주도에 영어마을 설립,문화접대비 손비(損費) 인정,병원 프랜차이즈 허용,기타 세제지원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지만 민원사항을 잔뜩 나열한 백화점식 정책 패키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비스산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핵심 지원 대상도 뚜렷하지 않다. 제대로 된 방안은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할 것 같다.

역시 보다 근본적인 것은 소비자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서비스 안에 담긴 엄청난 지식과 정보의 양을 느끼고 평가할 줄 아는 태도,복제와 복사보다는 진품과 정품을 돈 내고 구입함으로써 공급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어야 좋은 서비스가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지리라는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정말 필요한 것이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보상에 인색함으로 인해 토종(土種) 컨설팅 회사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한 채 외국계 회사에 엄청난 컨설팅료를 지급하면서 투덜대는 초라한 모습,그리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고급 의료 인력이 있는데도 의료산업을 국제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으로 키우지 못한 채 고급 의료는 모조리 해외에 의존하는 비참한 모습을 사라지게 할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바른금융재정포럼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