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A to Z] (1) 베트남.필리핀 '행복GDP'는 선진국

동남아 은퇴이민 붐은 한국 사회의 이중적 단면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은퇴 후 그동안 모은 돈으로 우리보다 못사는 국가로 떠나는 것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5년 전 동남아로의 은퇴이민이 시작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치솟는 집값,정체된 경제성장,심화되는 양극화가 은퇴 생활자들을 해외로 내모는 측면도 없지 않다. 20대 후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평생을 피땀 흘려 일해도 안락한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여유있는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한 은퇴이민 준비자의 고백은 이 같은 현실을 집약적으로 말해준다.

전문가들은 소득 2만달러를 앞둔 한국의 노년층이 1만달러에도 크게 못 미치는 동남아 국가로 떠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행복지수'가 그만큼 낮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GDP와 행복지수는 아무튼 상관관계가 없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대목이다.이와 관련,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 1월17일자에 게재한 특집기사 '행복에 관한 새로운 과학'에서 "소득 수준과 주관적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잡지가 인용한 런던 정치경제대학 교수 리처드 레이야드가 작성한 '행복GDP(각국에서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에 따르면 한국인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도는 70%대 중반. 반면 베트남과 필리핀 국민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도는 80%에 육박했다. 일본도 행복지수가 동남아보다 낮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동남아로'란 의문에 해답을 제시해주는 셈이다.

은퇴이민 전문가 김기범씨는 "소득 수준에 비해 높은 수준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동남아의 자연적.사회문화적 환경이 삭막한 생활에 지친 한국 노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남아로 향하는 은퇴이민의 대열이 갈수록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란 얘기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