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송년모임 풍속도가 달라진다

지난 22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정동의 스타식스 '비보이 코리아'전용 극장.비보이 코리아 단원들이 신명나는 국악 연주에 맞춰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를 연출해 낸다.

환호하는 관객들 중에는 20∼30명씩 무리 지어온 '넥타이 부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삼성서울병원 전산팀 직원 31명도 마찬가지.지난해까지 회식과 2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의미의 송년 모임을 가져온 이들은 올해 송년회의 컨셉트를 '문화 송년회'로 정하고,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이 부서 함영식 대리는 "단체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술 먹을 때보다 돈도 적게 들고 생동감도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연말 모임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과도한 술문화에서 벗어나 비보이 공연이나 뮤지컬,영화 등을 단체 관람한 뒤 맥주 한잔씩을 가볍게 마시고 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송년 모임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송년모임뿐 아니라 종무식 시무식 등 연말연시의 공식 행사들도 공연이나 부서별 장기자랑 등을 겸한 '이벤트'로 준비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문화 송년회로 각광받는 공연장은 정동이나 홍대앞 등의 비보이 공연장과 대학로 등의 뮤지컬 극장,CGV 골드클래스와 같은 프리미엄 영화관 등이다.일부 직장에선 공연장을 통째로 세내 소규모 사내 행사를 가진 뒤 공연을 함께 관람하기도 한다.

LG CNS 전자사업부 직원 300여명은 27일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가 공연되고 있는 서울 둥숭동 '대학로 소극장'을 전관 임대해 송년회를 갖는다.

올 한 해 동안 사내 체육대회나 등반대회 등 단합행사에서 찍은 사진을 편집한 동영상을 본 뒤 공연 관람 후 인근 대형 호프집을 통째로 빌려 맥주파티도 가질 예정이다.공연 송년회를 준비하는 이 부서 정원용씨는 "지난해까지 술자리 송년회를 할 때는 '도망가는'사람이 절반을 넘었지만 올해는 참여하겠다는 직원이 70%를 넘는다"고 말했다.

문화 송년회가 인기를 끌면서 공연 기획사 등도 짭짤한 연말 특수를 누리고 있다.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의 기획사인 PMC 관계자는 "이달 들어 삼성생명,삼성화재,대한생명,하나로텔레콤,한국3M 등 유명 회사들에서 송년 모임으로 뮤지컬을 관람했다"며 "특히 송년 모임이 몰려 있는 최근에는 직장인 단체 관람객이 매일 7∼8개팀에 이른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의 단체 영화 관람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CGV 골드 클래스도 연말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은 "골드 클래스의 경우 저녁 시간대 좌석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매진된 상태"라며 "송년회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없겠느냐는 민원성 문의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 송년회와 함께 전통 한옥 등을 빌려 아늑하고 여유있는 분위기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든파티 송년회'도 이색 연말 모임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에쓰오일 임원진 30여명은 지난 20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주택가에 위치한 예식장 '아트 브라이덜'에서 송년회를 열었다.

'아트 브라이덜' 관계자는 "값은 호텔 수준이지만 한 층 전체를 모임 공간으로 쓸 수 있고,북한산 절경이 훤히 보이는 정원을 쓸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연말까지 예약이 거의 차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국악 한마당,영화제,부서별 장기자랑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겸해 종무식이나 시무식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 대강당에서 '우리 사계,우리 음악'을 주제로 국악 공연이 어우려진 종무식을 갖는다.

아쟁산조와 남도민요,사물공연,마당놀이,판소리 공연이 펼쳐진다.

김혁수 한국야쿠르트 홍보 이사는 "틀에 박힌 종무식보다는 뭔가 의미있는 행사로 진행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서양 음악회에 이어 올해는 국악 공연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원F&B는 29일 종무식을 겸해 직원들이 참여하는 연주회를,GS리테일은 임직원들의 춤,개그,록밴드 등을 통한 자기자랑 행사를 종무식과 함께 마련한다.GS홈쇼핑은 27일 맥주파티와 새해 소원 트리 꾸미기,황금돼지 저금통 모금을 통한 불우이웃 돕기 행사 등을 종무식과 함께 가질 예정이다.

윤성민·이호기·이태훈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