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LIFE] 4부 은퇴이민 : (2) 호주.뉴질랜드 이민은 '좁은 문'

호주 시드니의 한인 밀집 지역인 이스트우드로 4년 전 이민 온 유강희씨(70).사시사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집앞 정원을 가꾸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생활비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2차 상품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피부로 느끼는 물가가 서울보다 훨씬 비싸다.

유씨는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후회하지 않을 은퇴 이민처"라고 말했다.

호주는 55세 이상 은퇴 이민자를 위한 비자(유효기간 4년·2년 단위로 연장 가능)를 발급하고 있다.그러나 은퇴 비자를 받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생활비도 만만치 않아 웬만한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호주 은퇴 이민을 꿈꾸기 어렵다.

은퇴 비자를 받으려면 부동산 주식 등 75만 호주달러(약 5억4675만원)의 보유 자산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탈세 없이 정당한 방법으로 벌었다는 사실도 입증해야 한다.이 같은 자산 이외 최소 연 6만5000달러(4738만원)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

의료보험 혜택도 없어 부부가 연 3000달러(218만원) 정도의 의료보험료를 별도로 납부해야 한다.

생활비 역시 많이 든다.부부 기준으로 기본적으로 매달 200만∼25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식으로 은퇴 비자를 받아 호주에 정착한 한국인은 100∼200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트우드의 유창호 이민법률사무소 사장은 "은퇴 비자 요건을 계속 강화하는 추세인 데다 비자를 받는 도중(1∼2년 소요) 신청자격이 바뀌어 이민을 못 오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반드시 호주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법무사의 도움을 받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주에 거주하는 자녀의 초청을 받아 이민을 오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자녀의 절반 이상이 호주 영주권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또 나이가 50세를 넘으면 투자 이민,기술 이민 등은 사실상 어렵다.

정치·문화·환경적인 면에서 호주와 비슷한 뉴질랜드 역시 은퇴 이민자들에게 문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같은 은퇴 비자 대신 투자 이민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금액이 만만치 않다.

200만 뉴질랜드달러(약 13억원)를 현지 은행에 예치한 뒤 약 5년간 인출하지 않는 조건이다.

이자도 턱없이 낮기 때문에 투자 이민으로 뉴질랜드에 정착하는 사람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2002년 이민법 개정으로 투자 이민자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춰야 하는 부담도 있다.

마커스 비버리지 이민법 전문 변호사는 "이민법 개정 이전에만 해도 100만달러만 투자하면 나이 제한은 물론 영어시험까지 면제해줬다"면서 "지금은 돈을 들고 와도 대졸자 이상의 영어실력이 없다면 이민 자체가 막혀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이에 대해 루스 다이슨 뉴질랜드 노동부 장관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가 뉴질랜드인데,최근 들어 투자 이민까지 제한하고 있다는 불만이 거세져 영어시험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이민 문호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드니(호주)=조성근 기자 ㆍ 오클랜드·웰링턴(뉴질랜드)=조재길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