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플라자] 北의 전략은 역시 '시간벌기'

金慶敏 <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 >

13개월 만에 열린 6자회담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차기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폐막했다. 한·미·일 입장에선 다음 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 회담이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지만 무력감은 크다. 이번 회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北核)을 과연 해체할 수 있을까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한국 협상단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무용론까지 제기될 정도이니 북핵의 평화적 해결은 더욱 요원해진 느낌이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을 완결시키기 위한 30여개의 이행과정을 5~6단계로 나눈 뒤 북한이 취할 조치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연계시킨 '패키지 딜'을 시도하며 대단한 적극성을 보였으나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금융제재 해제(解除)를 주장하며 팽팽히 맞섰다. 문제는 북한이 요구하는 몇 가지 조치를 이행한다면 북한이 과연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할까라는 점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회담이 결렬된 뒤 2차 핵실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미국에 대화와 방패로 맞서고 있으며,방패라는 것은 우리의 억지력을 더욱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해 핵무기 개발계획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성과 없는 6자회담의 폐막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내용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 목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할 것 같았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고 미사일 개발과 발사,그리고 핵실험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여년 가까이 북한이 시간 벌기에 급급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급기야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북한이 절대로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상정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일이다. 핵무기 개발 완성에는 몇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하는데 첫 번째는 핵무기 원료인 고순도의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이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핵무기 제조 기술이 있어야 한다. 플루토늄 핵무기의 경우 기폭장치의 제조는 첨단기술이 투입돼야 하므로 제작기술의 획득은 대단히 중요하고 그래서 핵실험을 통해 성공여부를 가늠하게 된다. 핵실험도 몇 차례 해야 그 진위(眞僞)를 가릴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운반수단인데 북한은 미사일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핵무기의 소형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핵무기의 진정한 기능이 성립됐다고 보기 어렵다. 핵무기 원료의 해외유출 등으로 테러집단에 유입될 위험성이 우려되는 것이지 실제로 전장(戰場)에 활용하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북한은 미사일에 탑재해 탄두화할 수 있는 핵무기의 소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무기체계 연구자들의 의견도 나뉘어 있지만 지배적인 평가는 핵무기의 소형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목표는 북한이 주장하는 요구들의 해결을 노리면서 결정적인 포기의 단계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회담을 지연시키고 시간을 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핵개발 프로젝트는 현재 핵실험 단계까지 드러났고 이제 '핵무기 미사일 탑재 완성'이라는 선언이 나오게 되면 그 때는 협상의 여지가 없게 된다. 핵실험을 한 것으로 핵보유국이라 우겨대는데 미사일에 탄두가 올려지면 위협의 정도가 몇 분 내에 공격가능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파국적인 결과가 예측되므로 북한이 하자는대로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북핵 해결의 방안은 대단히 제한돼 있다. 한반도 전면 전쟁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무력해결도 어렵다 보니 대화와 협상의 채널만 열려 있는데 6자회담의 결렬을 보며 이제는 기존의 방법에서 탈피해 경제제재 등의 초강경 국제협력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경악했던 일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등 망각 속으로 묻혀가고 있고 북한은 또 시간을 벌며 핵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