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전 퇴출

고전(古典)은 죽었다? 미국의 경우 공립도서관에서조차 문학의 고전들이 사라질 지경이라고 한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도서관 이용실태 조사 결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헤밍웨이),에밀리 디킨슨 시집 등 고전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자칫 서가에서 퇴출되게 생겼다는 것이다.

고전을 안 읽는 게 어디 미국만의 일일까. 영국에서도 대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찰스 디킨즈의 작품을 외면한다는 마당이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대학생들의 도서관 대출 우선순위가 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이라고 하는가 하면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일본소설이나 여행서가 꼽힌다. 독서 경향은 출판 동향에 그대로 드러나는 법. 2005년 국내에서 출판된 책은 4만3585종(2006 한국출판연감)이나 되지만 팔리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일본작가의 자극적 혹은 신변잡기형 소설과 조직생활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들의 처세서,진짜 필자가 누구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재테크서가 주축을 이룬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유종호씨(72)에 따르면 국내에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붐을 일으킨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는 '불안한 청년기에 가벼운 우울증을 앓는 심약한 청년들에게 마약같이 단기간의 안이한 위로를 제공해줄지 모르나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문학일 뿐'이다.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씌어진,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는 것이다. 어떤 책을 고르느냐는 개인의 자유에 속한 문제다. 모든 게 생각의 속도로 변한다는 세상에서 시대적 배경이 다른 고전을 읽으라는 건 다소 억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은 오랫 동안 검증이 이뤄진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괴테,에라스무스,김시습,정약용의 글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쉰다. 올해엔 베스트셀러라니 본다는 식에서 벗어나 이름난 고전을 읽어보면 어떨까. 다행히 국내에선 논술 붐 덕에 저작권료를 물지 않아도 되는 고전들이 재출간되고 있으니.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