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버블붕괴 = 경기침체' 아니다

朴宗奎 <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병(病)의 초기에는 치료는 쉬워도 진단해내기는 어렵다. 반면에 병을 알아차리거나 초기에 고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난다면 진단은 쉬워지지만 고치기는 어려워진다. 정치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라에 병이 번지는 것을 진작부터 인식한다면 신속하게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지경에 이르기까지 내버려둔다면 치료는 더 이상 없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비단 정치문제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적용된다. 버블이 처음 발생했을 때 진작부터 강력하게 대처해 나갔더라면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이 버블이라는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2년 초 강남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급등할 때부터 정부와 한국은행이 부동산 버블의 존재를 처음으로 인정했던 작년 가을까지 4년반 동안 우리는 수도권 아파트 값 상승이 과연 버블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 시간을 보냈다. 여러 가지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알맹이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부동산 가격에 버블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차리는 단계까지 왔다. 이제 더 이상 치료는 없는 것일까.

버블이 붕괴되면 일본식 장기침체가 온다는 걱정들을 많이 한다. 이는 물론 정책 당국이 항상 염두에 둬야 할 합당한 우려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들이 일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선제적 버블 억제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장기침체의 단초가 될지 모르니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면 안된다'는 데에까지 확대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버블의 바람을 빼되 붕괴시키지 말고 연착륙시키라는 요구는 지당한 얘기겠지만,그것은 버블 발생 초기단계에서 할 말이지 이제 와서 커질 대로 커진 버블을 무조건 연착륙시키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아무리 무서운 사자라도 구름처럼 몰려드는 들소 떼의 흐름을 막아내기 어렵듯이 아무리 강한 정부라도 사람들의 생각의 흐름을 단번에 끊어 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가 장기침체의 발단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경제가 그 이후 10여년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다. 1980년대 후반에 걸쳐 부동산 버블과 함께 실물경제에 누적됐던 과잉투자 및 과잉고용,그리고 금융부실의 청산을 10년 가까이 미뤄온 일본정부의 미온적(微溫的) 대응 등 세 가지가 버블 붕괴 자체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경제는 과잉투자나 과잉고용은커녕 과소투자가 문제가 돼왔고 안정된 일자리도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따라서 버블 붕괴로 경기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일본처럼 장기간에 걸쳐 과잉시설 및 과잉인력을 해소해야 할 부담은 별로 없을 것이다. 또한 집값이 하락하더라도 하락속도는 생각보다 급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버블은 일본과 달리 주거용 건물 중심이지 자금난에 쫓기면 헐값에라도 팔아치워야 하는 상업용 건물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 하락속도가 완만할수록 금융기관에 발생할 부실채권에 대한 대응 여지는 더 넓어진다. 정책당국도 1990년대 일본정부처럼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지 않는다면 버블붕괴가 금융기관을 통해 경제전체로 확산되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여건은 버블 붕괴 당시의 일본에 비해 운신의 폭이 넓은 상태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버블이 붕괴 일보직전까지 커지기 전에,지금이라도 부동산 가격 하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시간이 흘러가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보다 더 나쁜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하락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버블을 잡을 수 없다. 버블 붕괴를 피하려다 버블을 더 키우는 결과를 반복하기보다는 가격을 내릴 수 있는 알맹이 있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부작용이 두려워 투약(投藥)을 미룬다면 병을 고칠 기회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