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무너진 美 디트로이트 - (上) 문닫는 공장들] 노조가 '철밥통' 챙길때 도시는 죽어갔다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윅솜(Wixom)시의 주민들은 50년 가까이 포드공장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뉴욕 월가의 공용차로 통하는 링컨 타운카를 만들며 지역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그러나 1958년 설립된 윅솜공장은 작년 초 '사형선고'를 받았다.

'웨이 포워드'(Way Forward)로 명명된 포드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올 상반기에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놓인 것.현재 윅솜공장은 지역경제를 황폐화시킨 원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기자가 지난 10일(현지시간) 찾은 윅솜공장 주변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디트로이트=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미시간의 우울한 겨울 하늘빛을 닮은 회색의 공장은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아직까진 완전히 가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텅 비어있는 느낌이 들었다.번호판이 붙지 않은 신차가 듬성듬성 주차된 야적장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다.

인근 주민은 "1980년대에는 포드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잘나가는 공장이었다"며 "최근 주지사가 공장 문을 닫지 않으면 1억달러 이상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포드에서 거절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를 돌려 얼마 전 가동을 멈췄다는 GM(제너럴 모터스) 공장을 찾아 폰티악으로 향했다.디트로이트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40여분 달려 도착한 폰티악 공장은 예상대로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오는 길에 탐문한 결과 "폐쇄된 이후 창고로 쓴다"고 했다.

인기척은 없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장 맞은 편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직원 주차장도 폐쇄된 상태였다.

폰티악에서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으로 돌아오는 곳곳에 버려진 건물과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들이 목격됐다.

이곳에서 과거 '자동차 도시'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디트로이트의 건축미를 대표했던 옛 미시간 중앙역은 껍데기만 남은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30년간 버려져 있다가 얼마 전 철거된 디트로이트 힐튼호텔 부지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자동차 도시의 몰락'을 보는 듯했다.

자동차의 수도로 불리는 디트로이트는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도시의 자존심이자 상징이었던 GM과 포드가 경영난으로 잇따라 공장을 폐쇄하면서 지역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빅3'의 시장점유율은 51.5%로 전년보다 3.7%포인트 떨어졌다.

도요타를 비롯한 아시아지역 업체들의 점유율이 36.7%에서 40.4%로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1960년대에는 GM 혼자서 시장의 60%를 차지했던 적도 있었다.

'빅3'의 신화가 무너진 원인으로는 △무사안일에 빠진 경영진 △고객(시장)의 요구 무시 △외국차의 시장 잠식 △노사 대립 등이 꼽힌다.

이 중에서도 '노조발 경영위기'가 '빅3'의 몰락을 재촉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게 대다수 현지 주민들과 자동차업계 종사자들의 판단이었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반발로 구조조정이 늦춰졌고 유산 비용(Legacy cost)으로 불리는 과다한 의료 및 연금비용이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

실제 '빅3' 노조의 단체규약에 따르면 회사측 사정으로 종업원들이 일을 못하게 되더라도 평상시 임금을 거의 전액 지불해야 하고 노조의 동의 없이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고는 정해진 협상 기간 중에만 가능하며 충분한 보상금을 줘야 한다.

노조가 '철밥통'을 챙기는 사이 회사는 소리 없이 무너져갔다.

디트로이트도 직격탄을 맞았다.

1950년대 185만명에 달했던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2003년 91만명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가 최근에는 80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시간주에 있는 자동차 및 부품업체의 고용인원도 2001년 30만7253명에서 2005년 23만3150명으로 4년 만에 24.1%나 줄었다.

지난해 미시간주 실업률은 전년보다 0.4%포인트 높아진 6.9%로 미국 50개주 가운데 최고 수준.디트로이트의 실업률도 7.8%(2005년)로 전년에 비해 1.0%포인트 높아졌다.

'더 디트로이트 뉴스'의 크리스틴 맥도널드 기자는 "1920년대에는 디트로이트가 미국에서 1,2위를 다투는 도시였지만 현재는 다운타운의 건물 입주율이 50%도 채 안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값도 폭락했다.

다국적 부동산컨설팅회사 직원인 최진희씨는 "빅3의 공장 폐쇄 방침이 발표된 이후 디트로이트를 포함한 미시간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고 1년 이상 팔리지 않는 매물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문제는 '빅3'의 구조조정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GM과 포드의 공장 폐쇄가 잇따르는 가운데 다임러크라이슬러도 2월 말까지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러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빅3'의 회생은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