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정장 (正裝)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주인공인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17세의 미성년자인데도 007 제임스 본드를 흉내내 고급스럽고 세련된 정장을 하고서 사기행각을 벌인다. 프랭크는 자신을 쫓는 FBI요원을 조롱한다. "뉴욕 양키스가 왜 강한지 아는가. 그것은 실력이 아니라,상대팀이 유니폼만 보면 겁을 먹기 때문"이라고.

잘 갖춰 입은 정장은 품위와 개성이 돋보이고 예의가 있어 보인다. 또 맵시있게 차려 입은 정장이 좋은 인상을 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사기꾼들은 영화에서처럼 종종 악용하는 것이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도 그 사람의 내면이야 어떻든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양복 입은 사람을 두고 인격을 갖춘 신사라 지레 짐작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번했었다. 사회학자들은 정장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 말하기도 한다. 자신을 더욱 아름답고 권위있게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정장에 신경을 쓴다는 얘기다. 직장인들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깔끔한 이미지의 정장이 상사나 동료의 신뢰를 얻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격식파괴와 함께 개성이 강조되면서 주중에도 캐주얼을 즐겨 입었던 직장인들이 점차 정장을 선호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패션연구소의 최근 조사를 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정장을 하고서 출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이러한 경향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에 긴장감을 더하고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미국 기업에서 감원열풍이 불 때마다 정장타입의 의류판매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따지고 보면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멋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그 사람의 성격과 취미는 물론이고 교양까지도 엿보게 하는 것이다. 파격의 멋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정장은 가장 무난한 으뜸가는 옷차림이 아닌가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