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숙제

미국 중학교 1학년의 수학숙제는 무척 색다르다. "음악의 비트가 사람의 맥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령별로 구분해 실험한 뒤 그래프를 만들어라"하는 식이다. 이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클래식부터 빠른 하드록 음악까지 다양하게 들어야 하고,조사대상자의 연령대와 성별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들을 접촉해야 한다. 실험이 끝나면 데이터를 분석해 여러 장의 그래프를 만든 뒤,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아울러 질문을 받는 것으로 숙제는 마무리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계적으로 수학문제만을 푸는 우리네 숙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미국의 교사들은 가능한 재미있는 주제를 놓고서 학생 나름대로 창의성과 논리를 전개하도록 유도한다. 그런가 하면 생활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를 주어 까다롭긴 해도 아이들은 신바람을 내며 숙제를 하도록 한다. 이런 종류의 숙제도 한 학기에 몇 번이면 그만이다. 이처럼 학교숙제가 전혀 부담이 되지않는데도 아예 숙제를 없애는 초·중·고등학교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엊그제 보도했다. 숙제가 학력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숙제무용론'과 '숙제의 허상'이 힘을 얻어가기 때문인데,특히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유명 사립학교들이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단번에 숙제를 없애기 어려운 학교들은 과목당 일주일에 3시간 분량의 숙제를 내도록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초등학생은 하루 1시간,중학생은 90분을 넘기지 않아야 숙제의 교육효과가 있다는 미국전국교육협회의 주장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숙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학자들도 많아 숙제의 유·무용 논쟁을 딱부러지게 재단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숙제가 정신적·시간적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학생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숙제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숙제시간이 과도하면 되레 성적이 떨어진다는 '성적의 역효과'를 교육계가 심각하게 공론화할 시점이 됐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