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진보정책' 인기상품 되려면

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특별연설에서 "이 시대가 반드시 넘어가야 할 국가적 과제를 뒤로 넘기지 않고,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과 숙제를 남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민생 안정,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을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로 제시하고,작지 않지만 책임을 다하는 정부가 동반 성장전략과 사회적 투자 및 능동적 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가 이런 것이라면 참여정부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과 숙제를 남겨주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자신이 인정하듯 양극화 문제는 여전하고,민생은 안정되지 않았으며,국내 경제성장은 외환위기 이후 연 4%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와 성장동력 확충은 다음 대선(大選)에서 주요 쟁점으로 등장하고,다음 정부의 숙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후대에 남겨줄 업적은 무엇일까? 동반 성장전략과 사회적 투자를 중요시하고 이를 위해 작지 않은 정부가 필요하다고 하는 참여정부의 진보적 정책노선 자체라고 하겠다. 성공 여부를 떠나 참여정부의 정책노선은 그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노 대통령이 진보적 혹은 좌파적 정책노선을 따르게 된 것은 '양극화'로 집약되는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년 연설에서 민생이라는 말은 "4년 동안 저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으며, 민생 문제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痛感)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력했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보장제도,실업보험,누진적 세제 등의 진보적 정책을 도입하면서 서슴지 않고 구(舊)체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일련의 진보적 '뉴딜정책'을 통해 양극화를 해소했으며,보수적인 미국의 공화당을 변모시키기까지 했다. '뉴딜정책'이 성공하자 수구보수적 공화당원들이 힘을 잃고 루스벨트의 진보적 정책들을 인정하는 당원들로 대체되면서 공화당의 전통적 보수노선이 새롭게 변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수많은 민생 안정과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민생문제는 문민정부 시절에 생긴 것을 물려받은 것"이고,부동산값을 잡지 못한 것은 야당의 반대와 언론의 흔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경제를 아는 어떤 대통령도 5%를 넘는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말이 옳다고 하더라도 참여정부에서 생활형편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실망을 덜어줄 수는 없다. 게다가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분오열(四分五裂) 되고 있어서 야당인 한나라당의 보수적 정책노선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참여정부의 진보적 정책노선들이 전혀 영향력이 없어졌다거나 용도 폐기됐다고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와 민생 안정이 이 시대의 국가적 과제로 남아 있는 한 진보적 정책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선 후보들이 감세(減稅)를 통한 투자 진작과 예산 운용의 효율성을 강조할 수는 있어도,양극화 문제를 통감할 때 종부세나 소득세 누진율의 완화를 통한 내수 진작(振作)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참여정부의 '동반성장' 전략이 실패했다고 비판하기는 쉽지만,노 대통령의 경고대로 '성장을 통한 분배' 정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역사는 시계추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진보적 이념이 지배하면 다음에는 보수적 이념이 지배한다. 하지만 한쪽으로 간 만큼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시계추적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의 진보적 정책노선을 새 그릇에 담아내면 여전히 인기 있는 상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