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삶의 향기 … 담백한 울림 ‥ 문인들 산문집 잇단 출간

숨 돌릴 틈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자기 삶을 차분히 돌아보는 게 쉽지 않다.

어렸을 때 품었던 꿈은 어떻게 됐는지,현재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당장 내일 생을 마감한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등 내면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박완서 함정임 박형준 등 우리 문단의 원로·중진들이 펴낸 3권의 산문집에는 이처럼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 녹아 있다.

박완서씨(76)가 '거의 다 70이 넘어 쓴 것'이라고 밝힌 신작 산문집 '호미'(열림원)에는 어느덧 70살을 훌쩍 넘겨버린 노작가의 인생과 자연에 대한 통찰의 글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호미에 비유하며 '김매듯이 살아왔다'고 토로한다.'때로는 호미자루를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라면서도 박씨는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만 해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됐다'며 자신의 글이 독자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가기를 소망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 그는 '이 나이까지 살면서 가슴 터질 듯 격렬했던 행복도 있었지만 그런 행복감에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는데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불안이 없다'는 말로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운다.함정임씨(43)의 신작 에세이집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푸르메)은 제목처럼 작가를 가슴 떨리게 하고 미치게 만드는 여행과 예술,문학에 대한 이야기다.

'방랑객'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함씨는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과 암스테르담,에든버러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가며 여행과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

'빈 들판,빈 허공에 들었을 때 비로소 내가 얼마나 무겁고 복잡하게 살아왔는가 깨닫는다.비우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을 내가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거기,시원의 저편에서 찰나적으로나마 내 영혼과 만나기 때문이다.'

시인 박형준씨(41)의 산문집 '아름다움에 허기지다'(창비)에서는 가난하지만 시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학적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어느 문학강연회에서 시를 왜 쓰냐고 누가 묻기에 이렇게 되물은 적이 있다.

밥은 왜 먹느냐고.그러자 그는 '허기져서' 그렇다고 하였다.

'나는 아름다움에 허기져서 시를 써요.' 내가 말해 놓고도 그 말이 그럴싸했지만 술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점점 멋쩍어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인을 '미궁을 향해 나아가는 자'로 규정한 박씨는 "어려울수록,내가 돈을 벌려고 시를 썼나,그냥 좋아서 썼지 하는 초발심이 생긴다"고 말했다.초발심이라고 한 이유는 '사물을 낯설게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인식하는 순간 그것들은 가슴 떨리는 호기심의 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