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가짜그림 '엉터리 감정' 파문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소장 엄중구)가 변시지 화백(80)의 가짜 그림을 진짜로 감정해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엉터리 감정'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화랑협회(회장 이현숙)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대표 송향선)가 감정업무 제휴를 위해 올 1월1일 출범시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지난 2일 변씨가 가짜 그림이라고 주장하는 '조랑말과 소년(21.3×15.4cm)'을 진품으로 감정한 뒤 감정확인서까지 발급해 준 사실이 11일 확인됐다.이는 지난 4일 컬렉터 홍모씨가 서울 인사동 모화랑에서 구입한 변 화백의 작품을 작가에게 직접 재감정 의뢰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사실상 국내에서 근현대미술품을 감정하는 유일한 곳인 미술품감정연구소가 업무를 시작한 지 1개월여 만에 이 같은 사건이 터져 공신력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변 화백은 '조랑말과 소년'의 경우 아예 자신이 그리지도 않은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변 화백은 "서울 인사동 모화랑에서 이 그림을 구입한 컬렉터 홍모씨가 미술품감정연구소로부터 진품확인서를 받고난 뒤 재감정하기 위해 제주도로 찾아왔었다"며 "이 작품은 이미 2005년 8월 위작으로 판정났으며 불법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까지 찍어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가 위작임을 밝힌 작품을 작가에게 진위 여부 문의도 하지 않은 채 진품감정서를 발행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컬렉터 홍씨는 이 작품을 인사동 모화랑에서 900만원에 구입했다.미술품감정연구소가 올해 출범하면서 공신력 강화를 위해 감정위원을 20~30명으로 늘리는 등 외형적 '모양새'를 갖췄는 데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함으로써 미술계에서는 미술유통업계 전반에 다시 한번 '불신' 파문이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두 단체의 통합으로 우려했던 미술품 감정 독점현상의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났다"며 "미술품 감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거나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할 통로가 사실상 없어졌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는 재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술평론가 김준기씨도 "미술품을 사고파는 데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화랑주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미술품감정기구가 감정시장을 독점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엄중구 미술품감정연구소장은 "천경자 화백도 자신의 작품 '미인도'에 대해 가짜라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작품의 진위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작가 측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위탁자가 작품을 소유하게 된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