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철 국제부장의 일본 리포트] (上) 비용과 싸우는 기업들

도쿄 외곽의 하네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다 보면 부도심 시나가와를 거친다.

저녁까지 바쁜 놀림으로 한층 한층 올리느라 힘들었던 타워크레인의 불빛이 곳곳에서 밤을 밝히고 있다.중심가 마루노우치·히비야의 재개발지구.이곳에 최고급 페닌슐라호텔이 올해 문을 연다.

내년에 도쿄역 뒤쪽에 샹그릴라 호텔도 새로 개장한다.

과거 최장 경기 회복기였던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부터 57개월간 지속)를 넘어 60개월 연속 경기 확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현장들이다.기업인들의 얼굴에도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딛고 일어선 안도의 표정이 역력하다.

한국 언론인들을 맞은 센서와 컨트롤 기술의 선두주자인 옴론의 다테이시 노부오 상담역(고문·일본게이단렌 산하 경제홍보센터 부회장)은 "한국에 신세 많이 지고 있다"며 "경제는 양호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의 동생인 다테이시 다다오 부사장은 "옴론도 올해 최대 수익이 예상된다"고 거들었다.기업 수익만으로 치면 일본경제는 호황이다.

상장기업 전체로 4년 연속 최대 수익을 경신 중이다.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한 수출호조가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하지만 경기 호조에 대한 안도와 달리 자신감을 내비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기업인은 볼 수 없다.

"일본에서 빌딩 건설이 활발해진 것은 불과 3~4년 전부터입니다.

그것도 도쿄 위주죠.기업인들은 매사에 신중해졌습니다.

90년대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세토 유조 아사히 맥주 상담역)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 등극을 눈앞에 둔 도요타자동차.이 회사는 요즘 0.1%도 안 되는 숫자와 싸우고 있다.

도요타가 예상하는 2006 회계연도(2006년4월~2007년3월) 순익은 1조5500억엔(11조4000억원).말할 것도 없이 사상 최대치다.

이 회사는 작년에 임금을 1000엔 인상했다.

최대 수익을 경신하는 재무상태로만 보면 당연했지만 6년 만에 첫 인상이었다.

이 회사 노조가 올 봄 작년보다 500엔 많은 1500엔(1만1500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할 태세다.

근로자들도 수익 증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작년보다 더 요구하는 500엔은 도요타의 국내 직원 6만6000명을 기준으로 치면 연 3억9600만엔에 달한다.

순익의 0.03%도 안 된다.

인상 요구액 1500엔을 기준으로 해도 연간 전 직원의 인상액은 순익의 0.1%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도요타 경영진은 인상 요구에 신중하다.

아직 회사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았지만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한다.

요즘 일본기업들은 전례없이 근로자들의 보상확대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를 지탱하는 소비를 늘리기 위해선 기업들이 거둔 순익의 일부를 근로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11일자 머릿기사로 올해 초임을 오랜만에 올리는 기업 명단을 실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캐논은 4년 만에,가와사키 중공업은 8년 만에,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14년 만에 초임을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젊은 생산인력이 급감하는 현실에서 임금 인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는 0.1%도 안 되는 임금 인상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 중이다.

점점 높아지는 순익분배요구를 흔쾌히 받아주기 보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질 미래에 철저히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2007 회계연도 도요타의 R&D 투자액을 보면 고뇌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R&D 규모를 전년보다 10%가량 많은 920억엔으로 설정한 것.이를 위해 올 1~3월 비용을 300억엔 더 절감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국내뿐 아니다.

도요타의 미래를 보장할 미국 시장에서도 비용 절감 노력은 강화되고 있다.

현지의 임금 인상추세대로라면 도요타 북미법인의 인건비는 2011년까지 5년간 9억달러 늘어나게 돼 있다.

도요타는 이를 3분의 1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 대학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요즘 일본 대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합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일자리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굉장히 신중합니다.

늘 어려울 때를 준비하죠.현대자동차가 도요타 정도의 경영 상태라면 아마 자신만만하게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도요타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근로자들에게도 늘 미래의 불확실성을 경고합니다.그래서 직원들도 불만이 거의 없습니다."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