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인호씨 "원고지 대할 때마다 연인 껴안는 느낌"

최인호씨의 집필실에는 컴퓨터가 없다.

그는 지금도 원고지만 고집한다.글 쓰는 도구는 만년필.하도 힘을 주며 눌러 쓰는 바람에 펜촉이 갈라지기 일쑤다.

3년에 걸쳐 원고지 8000장의 '유림'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펜촉을 몇 개나 망가뜨렸다.

그는 지독한 악필로도 유명하다.출판사 편집자들은 그의 글씨를 판독하느라 애를 먹는다.

1차 교정지가 나온 뒤 교정쇄 곳곳에 '시뻘건 수정자'가 넘쳐난다.

납활자 시절,신문에 소설을 연재할 땐 그의 원고만 전담하는 문선공(활자를 뽑는 사람)이 별도로 있었을 정도다.그럼에도 그는 "펜이 너무 좋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가질수록 복잡해지는 게 싫다는 것.하긴 "원고지를 대할 때마다 사랑하는 여인을 껴안는 느낌"이라는 그에게 컴퓨터를 권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다.

그의 또다른 특징은 불교,유교,기독교의 세계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작가라는 점이다.그는 '유림'을 쓰기 전에 경허 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길 없는 길'을 썼다.

2~3년 후에는 예수에 대한 소설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에게 종교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구원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고 문학은 그 탐색의 여정이자 통로인 셈이다.

1987년 천주교에 입문한 그는 "'예수'는 내게 살아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없었으면 중동 쪽으로 취재여행을 떠날 작정이었다.

20년 전 가톨릭에 귀의할 때부터 집필을 결심했으니 그에겐 오래된 숙제나 마찬가지다.

예수에 대한 소설말고도 그가 계획하는 게 또 있다.

'진짜 재미있는 연애소설'을 한 편 쓰는 것.그는 '모든 여성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방화범'이 되고 싶다며 줄거리도 대략 구상해 놨다고 귀띔한다."주인공은 제 또래의 60대 남성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와이프에게 엉엉 울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기서 '엉엉 운다'는 게 특히 중요해요. 그 나이에 그러는 거 쉽지 않거든요. 와이프는 고민 끝에 남편의 연애를 허락하게 되지요. 그 이상은 노 코멘트!"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과 열정으로 무장한 최씨는 "한 사람을 완벽히 사랑하기에도 인생은 짧다"며 "끊임없이 사랑하되 흔들리지 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