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占집이 뜬다 ‥ 청년 취업대란 新풍속도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역술원 사주 카페 등 점집이 신세대들의 취업·진로 상담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강남과 이대 입구의 역술원,사주 카페의 전체 고객 중 70%가량이 취업 및 직업운을 보러 오는 젊은 층.역술가 이명기씨(45)는 "취업 상담을 위해 경제 용어와 기업 정보까지 공부해서 사주와 접목시켜 보다 체계적인 상담을 해 주고 있다"면서 "젊은이들이 인생 컨설턴트로 여기는 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입사 시험에 세 번 떨어진 정은정씨(가명·23)는 "내년이면 졸업인데 마음이 답답해 점집을 찾았다"며 "영업직보다 인사관리 같은 부서에 지원해 보라고 해 우선 속이 시원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외국 항공사에 다니고 있는 김지은씨(가명·26)는 점집의 도움으로 이직에 성공한 케이스.항공사 입사 전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에 다녔던 김씨는 관료적인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이직을 생각했다. 하지만 사표를 함부로 던질 수 없어 고민하고 있던 터에 친구의 소개로 서울 압구정동 M사주카페를 찾았다. 역술가는 "역마살이 있다"며 "해외로 돌아다니는 직업이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이 제한이 있는 국내 항공사보다는 외국 항공사 승무원에 도전해 보라고 구체적으로 짚어 줘 재취업에 성공했다.

6개월에 한 번 사주 카페를 찾는 송현수씨(가명·29·회사원)는 "취업이나 적성,진로를 고민할 때 다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취업센터보다 사주 카페에서 나만의 고민에 대해 맞춤 상담을 받고 나면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청명역리학회의 역술가 유수환씨는 "취업센터 같은 곳은 성적이나 전공 등 과거의 자료로 현재의 직업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고 있어 자칫 사무적일 수 있다"며 "하지만 역술가들은 직장 상사와의 인간 관계 등 신세 한탄을 들어 주는 동시에 운과 사주를 봐 거기에 맞는 직업을 권해 줘 젊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비용이 저렴한 것도 젊은이들이 자주 사주 카페를 찾는 이유다.

취업 컨설팅업체의 경우 패키지 취업 상담료가 90만~100만원이며 온라인으로도 10만원가량의 비용이 들지만 사주 카페는 한 번 상담에 3000~2만원 정도다.

IMF사태 이후 이른바 '공포의 세대'로 불리는 20대들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안정한 시기에 점술이 유행한다"며 "현재와 같이 취업 시장이 열악한 상황에서 구직자들에겐 미래를 안내해 주는 운세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 교육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정하고 그와 관련해 상담자를 찾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정답만을 요구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아 온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마치 정답처럼 미래를 예언하는 점술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상미·이미아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