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물소리를 듣다'

때론 보이지 않을 때 열려오는 귀가 있다

달없는 밤 냇가에 앉아 듣는 물소리는세상의 옹이며 모서리들을 둥근 율(律)로 풀어 낸다

물과 돌이 빚어내는 저 무구함의 세계는

제 길 막는 돌에게 제 살 깎는 물에게서로가 길 열어주려 몸 낮추는 소리다

누군가를 향해 세운 익명의 날(刀)이 있다면

냇가에 앉아 물소리에 귀를 맡길 일이다무채색 순한 경전이 가슴에 돌아들 것이니



-서숙희 '물소리를 듣다'전문-----------------------------------------------

도시의 허공엔 적의와 분노가 난무한다.

출퇴근길 앞 뒤 차들에 보내는 증오를 생각해 보라.늦은 밤 아파트 위층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분개한 적은 없는가.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도시를 이뤘으나 이젠 서로를 경계하고 절망할 뿐이다.

이 모두가 몸을 낮추지 않는 탓에 생기는 일이 아닌가.

물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제 길 막는 돌에,제 살 깎는 물에 서로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몸을 낮추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격한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우면 물과 돌이 빚어내는 그 화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