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이 더 이상 성장동력이 아닌 까닭은 …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정보기술(IT)산업에 빨간 불이 켜졌다.

가격 하락으로 IT 관련 기업의 수익률이 급락하고 있는 데다 소재·부품산업의 취약성과 생산·고용·소득 창출 효과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어 국내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으로서의 역할이 끝난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물론 정부는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등을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나 투입 재원이 여의치 않은 데다 조기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한국의 성장엔진이 급격히 식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IT산업 수익성 갈수록 떨어져

IT위기론은 한두 업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국내 IT산업을 이끌어온 반도체와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주력 산업이 2004년을 기점으로 완연한 퇴조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IT기업들은 대규모 장치산업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제품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팬택 이레전자 VK 등은 한계 상황을 맞고 있으며,반도체업체인 동부일렉트로닉스도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의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삼성 LG 등 내로라 하는 기업도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지난 몇 년간 50% 안팎이던 삼성전자 낸드플래시메모리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요가 정체된 반면 공급은 계속 늘어나 가격이 떨어진 때문이다.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인텔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낸드플래시 합작회사가 시장에 뛰어들면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세계시장을 주도해온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부문도 무한경쟁 시장인 '레드오션'으로 바뀌었다.

업계는 잇단 가격 하락에 좀처럼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대만과 중국 기업들까지 거센 추격에 나서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휴대폰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더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영업이익률은 2002년 26.8%를 정점으로 해마다 떨어져 지난해 10.1%를 기록했다.

LG전자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연간 기준 1.3%의 저조한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IT산업 파급효과도 떨어져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일본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이 인수·합병(M&A)과 협력 강화 등을 통해 국내 기업을 견제하는 가운데 중국이 해외 자본을 적극 유치하여 맹렬히 추격해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 IT산업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과 대만 기업들은 최근 대규모 투자와 합병 등으로 경쟁력을 높여가는 반면 한국은 각종 규제로 인해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업들이 IT를 실질적인 기업경쟁력 강화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 기업의 전자상거래 비중은 17.1%로 미국(23.4%) 아일랜드(21%)에 못 미친다.

e비즈니스(8.1%)와 e기업(3.3%) 등 높은 수준의 비즈니스 활용도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인터넷게임 등 개인 차원이나 웹사이트 구축 등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IT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만 정작 전반적인 산업경쟁력 강화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예컨대 IT 산업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패키지소프트웨어 산업은 지난해 시장 규모가 2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8%가량 줄었다.

기업의 생산성 혁신과 관련된 국내 IT시장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셈이다.

◆고부가가치 핵심부품 수입에 의존

IT수출액 대비 부품소재수입액 비율이 2000년 40.8%에서 2006년 35.9%로 떨어졌다.

하지만 IT 국산화율은 자동차(2000년 85.5%) 등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낮고 시스템온칩(SoC) 등 핵심 부품 및 제조장비 등은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IT산업의 국내 부가가치·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아 주력 성장산업으로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IT 인프라와 기술을 바탕으로 BT NT 등 다른 산업과의 융합에 적극 노력해 경쟁력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BT IT 등의 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로버트 러플린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도 "BT의 경우 영국 미국 등이 제약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일본조차 명함을 못 내미는 상황"이라며 "BT가 한국의 성장동력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조일훈/박성완/김현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