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급등] 세입자 외곽으로 외곽으로‥서민들 집줄여 이사 '비상'

2005년부터 서울 삼성동 22평형 아파트에서 살았던 김모씨(32)는 최근 2년간의 전세계약이 만료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분당신도시 19평형으로 이사했다.

삼성동 아파트의 전셋값이 전세기간 중 6000만원이나 뛴 탓에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평형을 줄여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강남보다 전셋값이 싼 분당으로 이사를 가면서 평형까지 줄였는데도 전셋값은 오히려 2000만원을 더 줘야 했다"고 하소연했다.전셋값이 1~2년 사이에 급등했던 데 따른 후폭풍으로 전.월세 세입자들이 평형을 줄여 타지로 이사가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통상 2년인 계약기간 중 전셋값이 5000만~6000만원씩 급등한 탓이다. 아파트를 버리고 전세가가 낮은 소형 다세대.다가구주택 등으로 둥지를 옮기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전셋값이 2년 전보다 3배 가까이 오른 인천 송도지구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세입자들이 도심에서 더 떨어진 외곽지역으로 밀려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집 규모를 줄여 이사가면서 침구류 등 상당수 가구를 버릴 수밖에 없는 일까지 생겨 서민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세물건 구하기 어려워급등한 전셋값을 마련하기 힘든 세입자들은 우선 평형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30평형대에 거주하던 사람은 20평형대로,20평형대에 거주하던 사람은 10평형대로 이동하는 식이다.

서울 구로동 U아파트 21평형에 사는 김오승씨(34)는 오는 5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두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2년 전 주변 시세보다 싼 7500만원에 신혼집을 마련했지만,전셋값이 현재는 1억3000만~1억4000만원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변에서 10평형대 아파트를 찾고 있지만,전세물건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아파트에서 다가구주택으로전세물건이 부족하다보니 아파트에 거주하던 세입자들이 줄줄이 다세대.다가구주택 등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단 전셋값이 같은 평형 아파트보다 최고 수천만원 싸기 때문이다.

예컨대 돈암동 24평형 아파트의 전셋값은 1억3000만원 안팎인 데 비해 주변 다세대주택 전셋값은 9000만원 정도다. 돈암동 D부동산 관계자는 "아파트 전세물건이 워낙 귀하다보니 손님들이 다가구 또는 다세대주택을 많이 찾는다"며 "하지만 다세대주택 역시 전셋값이 많이 뛴 상황이어서 그냥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북동에 거주하는 송모씨(40)는 "자녀가 두 명이어서 평형을 줄여가기도 만만치 않다"며 "주변 연립주택으로 이사가거나 대출을 받아 전셋값 상승분을 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갈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은행 대출을 받아 전셋값을 올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분당신도시 시범단지 33평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씨(42)는 "집주인이 7000만원을 더 줘야 계약을 연장해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며 "주변에 알아보니 다른 곳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외곽으로

용산구 청파동의 20평형 빌라에 사는 김모씨(41)는 주말만 되면 경기 남양주시 일대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닌다. 집주인이 다음 달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25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 도심에서 전셋집을 구하고 싶지만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회사와 거리가 멀더라도 수도권 외곽으로 나가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기 용인에 거주하는 이모씨(39)는 "부산에서 거주하다 수도권 지사로 발령받아 용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며 "현재 소유 중인 부산 아파트값보다 용인 전셋값이 두 배 이상 높아 어느새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말했다.입주를 앞두고 있는 동탄 등 신도시의 경우 입주 3~4개월 전에 미리 계약해 두려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동탄 S공인 관계자는 "서울이나 수도권 전셋값이 워낙 뛰다보니 요즘엔 입주를 한참 남겨놓고 미리 계약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소유주 입장에서도 잔금 걱정을 덜 수 있어 이런 식의 계약이 꽤 이뤄지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