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중국의 도량형

李禮善 < 오픈타이드차이나 대표 wyeth@opentide.com.cn >

일반 이력서의 공란(空欄)에서 쓸데없는 항목 중 하나가 지원자의 키와 몸무게 아닌가 싶다.중국에서 신입 여사원 면접 때의 일이다.

몸무게 란이 비어 있기에 무의식적으로 몸무게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면접자가 수줍은 듯이 "한 100근 됩니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뒤로 넘어갈 뻔했다.100근이라….중국의 도량형 중에서 무게 단위는 근(斤)이다.

한 근은 정확히 0.5kg,500g이다.

모든 거래 수단은 근이 기준이다.우리의 근은 쇠고기의 경우 한 근이 600g이다.

감자나 채소는 375g,과자류는 200g이 한 근이다.

물론 요즘 대도시의 대형 마트나 백화점의 경우 전자저울의 보급으로 대개는 100g을 기준으로 하지만 재래시장은 아직도 근을 많이 사용한다.중국은 물건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근이다.

사람 몸무게도 근이고,과일도 만원에 몇 개가 아니고 중량으로 달아서 판다.

수박,딸기,심지어 달걀도 근으로 값을 매긴다.

작은 달걀은 수량이 많고 큰 알은 수량이 적다.

품목당 단가만 정해져 있을 뿐이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기준이 우리는 평(坪)이지만 중국에서는 그저 제곱미터(㎡)만 쓰고 명칭은 평이라고 한다.

물론 한자로 표기할 때는 '坪'이 아니고 '平'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의 주량(酒量)을 말할 때 흔히 소주 몇 병,맥주 몇 병 식이다.

소주 두 병이면 술 좀 마신다는 말을 들을 것이고 맥주 한 병이라면 술을 잘 못한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주량 역시 단위가 근이다.

중국술은 거의 예외 없이 한 병이 500ml다.

500ml면 500g,즉 한 근이다.

술뿐이 아니고 일반 액체의 계량도 한 근인 경우가 많다.

물론 리터 단위가 많이 쓰이긴 하지만 술병은 한 근이 기준 포장 단위다.

그러다 보니 남의 주량이 얼마 정도인지 물어볼 때도 주량이 몇 근이냐고 묻는다.

대개는 40도 정도의 백주(白酒)를 기준으로 한다.

주량이 한 근이면 백주 한 병이란 얘기니까 술을 제법 하는 사람이다.

우습게 보여도 한 나라의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과학기술의 기초는 도량형의 통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고서는 모든 측정 및 계산이 제대로 될 수 없다.

21세기 첨단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되,말,관이 통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도량형을 제일 먼저 통일한 사람은 진시왕이다.

나라를 통일하고 도량형도 통일해 중국 과학기술의 기초를 다진 왕이다.현대 중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의 업적 중 하나가 도량형의 통일이다.

중국 과학기술 발전의 모멘텀을 만든 공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