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창설 50주년] (3) 동유럽에 낯익은 거리이름 … Koreanska … Samsung Ter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쯤 날아 도착한 인구 64만명의 산업도시 브로츠와프.공항을 나서니 LG 광고판이 눈에 띈다.

이어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20분쯤 달리자 LG디지털디스플레이 단지가 눈앞에 펼쳐진다.경제특구인 이곳의 규모는 75만여평.시민의 4분의 1이 학생으로 양질의 인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어 외국 기업들이 선호하는 폴란드 내 대표적 산업단지다.

체코 국경과 인접해 있으며 독일과도 매우 가깝다.

윤병도 LG전자 브로츠와프법인장(상무)은 "현재 TV와 냉장고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며 "유럽 판매 물량은 현지에서 100% 공급할 수 있도록 공장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같은 단지 내에 있는 LG필립스LCD의 LCD모듈(반제품) 공장도 최근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종업원 1000여명이 4조 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

최창호 LG필립스LCD 법인장은 "수요에 따라서는 2011년까지 11개 라인,1000만대까지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 법인장은 "희성전자 동서전자 동양전자 LG이노텍 LG화학 등 협력사들도 단지 내에 들어와 일관생산체제를 갖췄다"며 "이 때문에 브로츠와프에 거주하는 교민 수가 바르샤바를 앞지를 정도"라고 전했다.폴란드 정부는 한국 기업들의 이 같은 대규모 투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주변 길을 Koreanska(한국로),Seulska(서울로)로 명명했다.

현지 신문인 가제타프로나도 "투자액 기준 상위 10대 프로젝트에 LG필립스LCD LG전자 등 한국 기업이 3건이나 올라 있는 등 외국인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며 LG 바람을 크게 보도했다.

동유럽의 유럽연합(EU) 진입과 함께 한국 기업들도 세계 굴지의 기업과 함께 동진(東進) 대열에 가세했다.LG 외에 SK케미칼 대우일렉 등이 현재 폴란드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헝가리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SDI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의 주요 전자 계열사 및 건설사가 포진해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기아차가 슬로바키아에서 이미 공장을 가동 중이고,현대차는 체코 동부의 노소비체 타운에 곧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한국타이어가 5억유로(약 6200억원)를 투자,2010년까지 연간 1000만개 이상의 타이어를 생산키로 한 것도 현대·기아차를 겨냥한 포석인 셈이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동유럽에 일관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 값싼 인건비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LG전자 브로츠와프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 평균 임금은 1300~1500즈워티(약 40만~55만원)로 한국의 4분의 1 수준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동력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만 20~24세 인구의 최고 고등교육률(45.2%)을 자랑하는 나라가 바로 폴란드다.

LG전자가 폴란드행을 위해 영국 뉴캐슬 공장을 과감히 폐쇄한 이유이기도 하다.

동유럽 국가들이 외자 유치를 위해 제시하는 파격적인 지원도 매력적이다.

투자 규모에 따라 근로자 교육과 공장 부지 지원에다 일정 기간 각종 세제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삼성전자 측이 공장 부지가 부족하다고 하자 헝가리 정부가 2만여평의 토지를 인센티브로 지원한 게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 헝가리법인의 주소가 '삼성테르(Samsung Ter:삼성 광장) 1번지'인 것도 헝가리 정부의 큰손에 대한 배려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정책 변화가 심한 등 사회주의 국가가 안고 있는 함정도 많다.

투자계약을 위반할 경우 상당한 위약금을 감수해야 한다.삼성전자의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지역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이승구 법인장은 "동구권은 1990년대 중국과 투자환경이 비슷하다"며 "투자환경 변화에 대응해 장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진입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브뤼셀=김영규/브로츠와프·부다페스트=안정락 기자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