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체 절도는 '친족상도례' 적용못해

할아버지 통장에서 자금이체 방식을 통해 돈을 빼냈을 경우 은행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친족간 절도에 한해 형을 면제해주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은 할아버지 통장에서 돈을 꺼내 사기·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 사건에서 “친족상도례를 적용해 형을 면제한 것은 위법하다”는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유죄취지로 사건을 파기,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친척 소유의 통장을 절취해 계좌이체를 할 경우 최종 책임이 예금 명의자에게 전가된다고 하여 이중 채무를 진 금융기관이 피해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경우 친족 사이의 범행을 전제로 한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정씨는 친할아버지 소유의 단위농협 통장을 훔쳐 자신의 계좌로 57만원을 이체,컴퓨터 등사용 사기·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징역 8월을 선고했지만 2심 법정에서는 친족간 절도의 경우 형을 면제한다는 친족상도례를 적용,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에 대한 형을 면제했다.그러나 대법원은 “금융기관 사이의 자금이체거래는 현실적인 자금의 수수없이 지급·수령을 실현하는 거래방식이므로 권한없이 자금이체를 할 경우 거래은행은 예금계좌 명의인과 자금이체를 받은 다른 금융기관 등에게 이중의 채무를 지게된다”며 은행이 피해자임을 분명히 했다.

친족상도례는 형법상 직계혈족·배우자 등 ‘가족간 절도’ 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는 특례 규정으로 이는 친족간의 정의(情誼)를 고려하여 법률이 가능한 한 가정생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