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히 뜯어 보는 FTA] 자동차 : 미국산 車, 국산車보다 싸질수도

미국 크라이슬러의 중형 승용차 'PT크루저'(2429cc)는 우리나라에서 2850만원(세금 포함)에 팔린다.

동급 경쟁차량인 현대차의 쏘나타 F24s 기본형(2718만원)보다 132만원 비싸다.2009년께 한·미 FTA가 발효돼 수입차에 붙는 관세(8%)가 없어지고 2000cc 이상 차량(국산차 포함)의 특소세가 10%에서 5%로 낮아지면 두 차종의 가격은 어떻게 될까.

답은 '역전'이다.

PT크루저는 2488만원,쏘나타 2.4는 2563만원으로 오히려 쏘나타가 75만원이나 비싸진다.관세 철폐와 특소세 감면 및 인하 혜택으로 PT크루저는 판매가 기준 12.7%의 인하효과를 얻는 데 비해 쏘나타 2.4의 가격은 5.7% 인하에 그치기 때문이다.

수입차 업체의 마진 등을 고려치 않은 산술적인 계산이지만 이런 상황이 실제가 될 경우 소비자들은 어떤 차를 선택할까.

다른 차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미국차와 국산차의 가격이 현격하게 좁혀져 일부 차종은 사실상 가격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와 국산차가 이제는 가격이 아닌 품질과 성능,서비스로 승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국산 차 국산 차보다 싸지나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가장 싼 수입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닷지 캘리버로 2690만원이다.

배기량이 1998cc여서 특소세 감면 혜택은 없지만 관세 철폐만으로 판매가가 2491만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이에 비해 같은 배기량의 쏘나타 N20(프리미어 슈퍼형) 가격은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2460만원으로 변화가 없다.

가격차이가 230만원에서 불과 31만원으로 줄어든다.

수입차의 프리미엄을 감안할 경우 이 정도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차이는 없어지는 셈이다.

포드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이스케이프 2.3XLT(2261cc)은 현재 3000만원에서 2619만원으로 떨어질 수 있다.

현대차 투싼 최고급형(2423만원)과의 격차가 대폭 좁혀진다.

더구나 2000cc가 넘는 이스케이프는 특소세가 10%에서 5%로 줄지만 투싼(1991,1997cc)은 특소세 인하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차도 가격을 낮춰 우리나라에 상륙할수 있다.

관세를 물지 않을 경우 운반료 등을 감안하더라도 일본보다는 미국에서 들여오는 쪽이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실제 혼다의 인기차 시빅 2.0의 경우 한국 내 판매가 2990만원인데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 우회 수입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크라이슬러와 포드 등 미국 업체들은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2000만~3000만원대의 중저가 차량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며 "한·미 FTA 협정 발효 시점에 맞춰 판매가를 크게 떨어뜨림으로써 한국시장 공략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누가 더 덕볼까

한·미 양국이 자동차 시장의 진입 및 판매 장벽을 사실상 완전히 허물기로 합의함에 따라 어느 쪽이 더 덕을 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로선 서로 '주고받는 식'으로 '빅딜'을 이뤄낸 만큼 이해득실에 대한 계산이 쉽지 않지만 대체로 한국이 조금 유리해보인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관계자는 "미국산 수입차에 대한 관세철폐로 한국 내수시장 잠식은 불가피하지만 미국의 자동차시장 규모가 연간 1700만대이고 우리나라는 110만대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FTA 협상 결과는 한국 업체에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은 중소형 차량의 미국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3000cc 이하 중소형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철폐 첫 해 대미 자동차 수출이 FTA 체결 전에 비해 금액 기준으로 6억달러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는 지난해 미국에 총 69만3124대(87억1065만4000달러)를 수출했다.

3000cc미만 차량의 경우 현대차 대미 수출물량의 86.8%,기아차의 60.1%에 달하기 때문에 효과는 클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 시장은 어느 정도 미국산 차량들에 내줘야할 판이다.

관세와 특소세 인하 효과를 등에 업은 미국 업체들이 할인공세 등 공격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GM 등 미국 '빅3'가 실적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을 노린 전략 차종을 내놓을 경우 한국 시장을 급속도로 파고들 수 있다.

우리 업체들이 품질과 성능을 더욱 높이고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이런 이유에서다.한국 자동차 시장도 이제 '글로벌 진검승부' 시대로 접어든 셈이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