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속으로] 대한통운‥국제특송 DHL 추격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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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대한통운은 베트남 호찌민에 국내 물류업계 최초로 합작법인을 설립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동아건설 파산에 '엮여' 2000년 11월부터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기업이 떡하니 해외법인을 세웠으니 그럴만도 했다."딱 10년 만입니다.
1996년 베트남에 연락 사무소를 연 게 정상 기업으로서 대한통운이 마지막으로 한 해외투자였거든요."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대한통운의 변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일들을 지난 1년 여간 연달아 터뜨렸다.
한.중.일을 잇는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지난해 마무리한 데 이어 올 3월엔 월간 기준으로 택배 물량 1000만상자를 돌파했다.
실적에서도 업계 수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작년 말 60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한진,현대택배,CJ GLS 등 후발 추격자들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한 대가로 동아건설 대신 13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았던 6년 전만 해도 대한통운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금호,현대,STX,롯데,GS,CJ그룹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인수대상으로 '눈독'을 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국동 사장은 "시련은 가혹했지만 그만큼 담금질도 단단했다"며 "대한통운은 1930년 창업 이래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통운이 법정관리라는 '멍에'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데는 절체절명의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이 사장은 이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소니가 중국에 진출할 때 물류 부분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세요? 일본통운이라는 자국 물류회사와 동반 진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통운과 대한통운 간 격차가 15배까지 나는 겁니다. 일본의 물류회사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대한통운은 '라이벌'인 일본통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작년 1월 베트남을 신호탄으로 3월 중국 상하이,7월 일본 도쿄에 각각 법인을 설립하고 올 들어선 중국 톈진,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깃발을 꽂았다. 한.중.일을 잇는 네트워크의 위력은 금세 나타났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사 관계자는 "도쿄에서 반도체 설비를 들여와 상하이까지 운반하는데 비싼 운임료와 까다로운 절차 등을 감수하고 항공을 활용해왔지만,올 1월부턴 육상과 해상을 잇는 대한통운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운송시간과 위험도를 훨씬 낮췄다"고 소개했다.
김세종 대한통운 국제물류본부장은 "보낸 곳에서부터 받을 곳까지 원스톱으로 한 회사가 물류에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게 L사엔 가장 큰 이익이었을 것"이라며 "3자 물류라 불리는 이 같은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일이 대한통운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한통운은 올 연말까지 홍콩,중국 베이징.칭다오.다롄,일본 오사카,두바이 등에 법인을 추가 설립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이미 국내의 한 대기업과 해외에 진출할 때 창고 등 물류 거점을 대한통운이 마련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DHL,페덱스 등 글로벌 물류기업에 마냥 뒤처지기만 했던 국제특송사업에서도 대한통운은 착실히 추격의 발판을 마련 중이다. 작년 1년간 미국 지점 수를 5개에서 13개로 늘리고,택배 취급점도 150곳을 신설했다. 그는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는 물량은 아직 DHL 등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물량만큼은 대한통운이 서서히 외국계의 영역을 잠식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직원 수 6300여 명,트럭 및 중장비 1만6500대 등 국내 최대 물류기업이라는 무시못할 저력이 이 같은 대한통운의 도약을 뒷받침했다. 국내 택배 취급점은 1만여 개에 이르며 부산 인천 등 항만 하역 사업장만 22개에 달한다. 이 사장은 "1983년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이뤄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했다가 2000년 동아건설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돼 대한통운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한통운은 창업 이래 한 차례도 적자를 내 본 적이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특히 대한통운 특유의 강한 노사 간 응집력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노조가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46년간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 김학수 노조위원장은 "물류라는 국가의 기간산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직원들 사이에서 남달리 강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직접 대한통운 노사 양측에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사측도 법정관리 기업이 으레 취하곤 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극도로 자제,노조의 충성심에 답했다.
대한통운의 미래는 법정관리를 벗어난 이후 어떤 새로운 '파트너'를 맞느냐에 달려 있다. 경영 정상화의 일정상 현재 발행주식 만큼의 주식을 새로 발행하고 이후 전체 주식의 50%+1주를 제3자에게 배정하겠다는 게 법원 방침이기 때문이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완전히 끝났지만,대한통운이 이와 관련해 어떤 부채도 없다는 최종완공증명이 발급된 이후에 구체적인 인수합병(M&A) 일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대한통운이 M&A가 종료됨과 동시에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른 법정관리 기업 상당수가 M&A로 들어온 돈을 채권단에 갚아야 하는 것과 달리 대한통운은 유상증자로 유입된 자금의 대부분을 미래를 위한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통운의 현재 주가를 감안하면 1조원 이상 유입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의 보증채무를 인수하는 등 빚을 대신 갚아주는 데 약 9000억원(지난해 5월 현물로 갚은 주식 가치를 현재 주가로 환산한 것 포함)을 썼고,법정관리 기업이라는 한계로 은행 여신에 어려움이 있던 탓에 매출이 2000년 1조25억원에서 작년 말 1조1703억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며 "하지만 새로 유입될 투자자금을 통해 그간 막혔던 '투자 물꼬'가 확실히 트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동아건설 파산에 '엮여' 2000년 11월부터 법정관리를 받고 있던 기업이 떡하니 해외법인을 세웠으니 그럴만도 했다."딱 10년 만입니다.
1996년 베트남에 연락 사무소를 연 게 정상 기업으로서 대한통운이 마지막으로 한 해외투자였거든요."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 대한통운의 변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업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일들을 지난 1년 여간 연달아 터뜨렸다.
한.중.일을 잇는 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지난해 마무리한 데 이어 올 3월엔 월간 기준으로 택배 물량 1000만상자를 돌파했다.
실적에서도 업계 수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작년 말 60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한진,현대택배,CJ GLS 등 후발 추격자들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마무리 짓지 못한 대가로 동아건설 대신 13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았던 6년 전만 해도 대한통운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대한통운은 금호,현대,STX,롯데,GS,CJ그룹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인수대상으로 '눈독'을 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국동 사장은 "시련은 가혹했지만 그만큼 담금질도 단단했다"며 "대한통운은 1930년 창업 이래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통운이 법정관리라는 '멍에'에도 불구하고 해외 투자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데는 절체절명의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이 사장은 이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소니가 중국에 진출할 때 물류 부분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세요? 일본통운이라는 자국 물류회사와 동반 진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통운과 대한통운 간 격차가 15배까지 나는 겁니다. 일본의 물류회사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대한통운은 '라이벌'인 일본통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작년 1월 베트남을 신호탄으로 3월 중국 상하이,7월 일본 도쿄에 각각 법인을 설립하고 올 들어선 중국 톈진,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깃발을 꽂았다. 한.중.일을 잇는 네트워크의 위력은 금세 나타났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사 관계자는 "도쿄에서 반도체 설비를 들여와 상하이까지 운반하는데 비싼 운임료와 까다로운 절차 등을 감수하고 항공을 활용해왔지만,올 1월부턴 육상과 해상을 잇는 대한통운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운송시간과 위험도를 훨씬 낮췄다"고 소개했다.
김세종 대한통운 국제물류본부장은 "보낸 곳에서부터 받을 곳까지 원스톱으로 한 회사가 물류에 관련된 모든 일을 처리해주는 게 L사엔 가장 큰 이익이었을 것"이라며 "3자 물류라 불리는 이 같은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일이 대한통운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한통운은 올 연말까지 홍콩,중국 베이징.칭다오.다롄,일본 오사카,두바이 등에 법인을 추가 설립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이미 국내의 한 대기업과 해외에 진출할 때 창고 등 물류 거점을 대한통운이 마련하고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DHL,페덱스 등 글로벌 물류기업에 마냥 뒤처지기만 했던 국제특송사업에서도 대한통운은 착실히 추격의 발판을 마련 중이다. 작년 1년간 미국 지점 수를 5개에서 13개로 늘리고,택배 취급점도 150곳을 신설했다. 그는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는 물량은 아직 DHL 등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물량만큼은 대한통운이 서서히 외국계의 영역을 잠식해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직원 수 6300여 명,트럭 및 중장비 1만6500대 등 국내 최대 물류기업이라는 무시못할 저력이 이 같은 대한통운의 도약을 뒷받침했다. 국내 택배 취급점은 1만여 개에 이르며 부산 인천 등 항만 하역 사업장만 22개에 달한다. 이 사장은 "1983년 동아건설과 컨소시엄을 이뤄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했다가 2000년 동아건설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돼 대한통운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한통운은 창업 이래 한 차례도 적자를 내 본 적이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특히 대한통운 특유의 강한 노사 간 응집력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었다. 노조가 설립된 이래 현재까지 46년간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 김학수 노조위원장은 "물류라는 국가의 기간산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직원들 사이에서 남달리 강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직접 대한통운 노사 양측에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사측도 법정관리 기업이 으레 취하곤 하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극도로 자제,노조의 충성심에 답했다.
대한통운의 미래는 법정관리를 벗어난 이후 어떤 새로운 '파트너'를 맞느냐에 달려 있다. 경영 정상화의 일정상 현재 발행주식 만큼의 주식을 새로 발행하고 이후 전체 주식의 50%+1주를 제3자에게 배정하겠다는 게 법원 방침이기 때문이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완전히 끝났지만,대한통운이 이와 관련해 어떤 부채도 없다는 최종완공증명이 발급된 이후에 구체적인 인수합병(M&A) 일정이 시작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대한통운이 M&A가 종료됨과 동시에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른 법정관리 기업 상당수가 M&A로 들어온 돈을 채권단에 갚아야 하는 것과 달리 대한통운은 유상증자로 유입된 자금의 대부분을 미래를 위한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통운의 현재 주가를 감안하면 1조원 이상 유입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의 보증채무를 인수하는 등 빚을 대신 갚아주는 데 약 9000억원(지난해 5월 현물로 갚은 주식 가치를 현재 주가로 환산한 것 포함)을 썼고,법정관리 기업이라는 한계로 은행 여신에 어려움이 있던 탓에 매출이 2000년 1조25억원에서 작년 말 1조1703억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며 "하지만 새로 유입될 투자자금을 통해 그간 막혔던 '투자 물꼬'가 확실히 트이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