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대기업, 앞다퉈 '여성복 직수입' 왜?

띠어리,안나 몰리나리,마크 제이콥스,DKNY,토미 힐피거….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을 찾은 전업주부 안희영씨(35·서울 논현동)가 봄 옷 구입을 위해 들른 매장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일모직 LG패션 FnC코오롱 SK네트웍스 등 패션 대기업들이 수입하는 여성복 브랜드라는 것.올초 제일모직은 뉴욕 미니멀 패션의 대명사인 '띠어리'를 수입하기 시작했고,LG패션도 지난 4일 이탈리아 블루핀사(社)와 계약을 맺고 안나 몰리나리,블루마린,블루걸 등 3개 브랜드의 여성복을 독점 수입키로 했다.

SK네트웍스와 FnC코오롱,두산 의류부문 등도 에스프리,마크 제이콥스,DKNY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직수입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쟁쟁한 패션 대기업들이 외국에서 만들어 놓은 옷을 단순히 들여와 판매만 대행하는 '직수입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용병' 투입해 여성복시장 잡는다그동안 제일모직 등 대기업들은 디자인보다 원단을 더 많이 따지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남성복(갤럭시,마에스트로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성복 분야에선 오히려 한섬(타임,마인) 오브제 등 중견업체에 밀리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견기업에서 일한 검증된 디자인 인력을 영입해 여성복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펼쳤으나 여기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LG패션은 '데코'의 김영순 상무를 데려왔고,코오롱은 중견업체 '미샤' 출신의 김복희 상무를 영입한 바 있다.

김현철 현대백화점 여성캐주얼 바이어는 "여성 의류는 유행에 민감하고 한 시즌에 내놓는 품종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한 대기업이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조원 규모였던 의류 시장에서 여성복이 차지하는 비중은 65%(7조원)에 달한다. 매출액 대비 영업 이익률이 60%(신사복은 평균 40% 선)에 가깝다. 여성복 시장이 '패션 시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여성복 브랜드라도 대기업이 하면 이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제일모직 LG패션 등은 백화점과의 유대관계가 탄탄하고 영업망이 촘촘하다. 유명 신사복과 패키지로 묶어 입점하면 중소기업 여성복보다 수수료율을 낮게,매장 위치는 좋은 곳으로 배정받을 수 있다. 인기 브랜드만 몇 개 보유하면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다.

즉 수입 브랜드 도입 러시는 대기업으로선 이렇게도 저렇게도 안되는 여성복 시장에 '용병'을 투입한 것이란 분석이다. 중견 여성복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을 선진국에서 인기있는 브랜드를 직수입해 뚫겠다는 것.수입 사업을 위해 업체들은 각각 조직도 개편했다. 제일모직은 수입사업부를 여성복컴퍼니로 편입해 전략팀을 꾸리고 쓸만한 해외 브랜드를 물색 중이다. LG패션은 개발사업부 아래 '신규사업 태스크포스팀'을 신설하고 뉴욕,밀라노 등지의 여성복 시장 조사에 착수했다.

◆소비자에겐 어떤 혜택 있나

제일모직 '띠어리'는 원래 중소수입상 '개미플러스'가 들여오던 것을 올초 넘겨 받은 것이다. LG패션의 안나 몰리나리 역시 중견업체 일경(옛 태창)이 들여오던 것을 매장째 인수했다.

'큰 손'으로 수입사가 바뀌면서 '바잉 파워'가 커진 만큼 가격도 내렸을까. 갤러리아 백화점 여성복 매입부 관계자는 "띠어리의 원피스 가격은 35만~50만원으로 지난해 봄 시즌과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수입 브랜드를 들여오면 중소업체가 매입할 때보다 한 시즌 구입량이 늘어 제품 도입 단가는 조금 낮아진다"며 "하지만 여성복 가격은 도입가와는 무관하게 해당 브랜드의 이미지에 걸맞은 수준으로 책정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즉 대기업이 맡아 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인지도가 올라가면 되레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상품 선택폭은 예전보다 넓어질 전망이다.

자금 사정이 넉넉해 다양한 품종을 여유있게 발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자체 상설 할인 매장(아울렛)을 갖춰 상대적으로 재고 부담이 덜하다.제일모직 수입사업부 관계자는 "띠어리 브랜드의 마니아들은 우리 회사가 직수입을 맡으면서 상품 구색이 다양해져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