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미 FTA 이후의 과제

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미국의 남쪽에서 크게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 미국 남부는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공동화(空洞化)될 것이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제3의 후보로 나와 19%의 표를 얻었던 로스 페로가 남긴 말이다. 그는 미국과 멕시코가 FTA를 체결하면 멕시코의 저임금 때문에 미국의 투자가 멕시코로 이동하고,멕시코의 싼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미국 남부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멕시코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에 비해 매우 작은 나라이므로 미국 남부를 공동화시킬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또 양국의 무역은 FTA 이전에 상당히 개방되었으므로 FTA로 발생할 이득이나 손실규모도 크지 않았다.

신뢰할 만한 연구에 의하면,FTA 체결로 양국이 얻는 이득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GDP 대비(對比)로는 멕시코의 경우 GDP의 4%를 넘은 반면,미국의 경우 0.1% 수준으로 추정됐다. 미국과 FTA를 타결(妥結)한 우리나라도 멕시코와 사정이 비슷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규모는 미국의 15분의 1 정도여서 미국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한편,한·미 FTA의 성공적 타결로 양국이 얻는 이득이 비슷하다면,우리나라가 얻는 이득이 GDP의 4% 수준일 때 미국이 얻는 이득은 GDP의 0.3%에 그친다.

그런데도 미국이 작은 나라들과 FTA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양자간 협상을 통해 다자간 협상의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함이다. 다음으로는 FTA를 통해 우방(友邦)을 확대하려는 외교정책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자유무역협상에서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시장경제 개혁(改革)을 하려는 멕시코를 지원함으로써 얻게 되는 외교적 이득이 자유무역의 경제적 이득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미 FTA 타결로 친미·반미의 갈등을 넘어 새로운 한·미 관계가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성공단 제품 수출 문제가 처음부터 협상 의제(議題)로 제시되면서 한·미 FTA가 남북교류와 한반도 안보로 연결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에 따라 일본과 중국은 한·미 FTA가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보다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한·미 FTA로 얻는 이득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한·미 FTA의 효과를 과장 선전해서는 안 된다. 자유무역과 자유시장경제가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높아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 노동시장이 여전히 경직적이고 산업구조 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FTA 이득은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면 정부가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이번 협상에서 교육과 의료 부문 개방이 미진했음을 지적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3불(不) 교육정책 기조를 수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함으로써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자유무역 지지자들과 벌써부터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들은 한·미 FTA를 전제(前提)하지 않고서도 향후 7% 성장을 공약하고 있다. 공약의 실현여부를 떠나 경제운용 패러다임의 변화가 FTA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올 수 있음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거시경제 정책의 중요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FTA는 시장경쟁을 강조하는 미시경제 정책이지만,미시정책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는 그 후 유입되는 자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2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나라는 1년 만에 외환위기를 겪었다. FTA만으로는 부족하고 거시정책 등 여타 정책들을 조화롭게 운용해 경제를 안정시키고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