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손글씨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글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려 편지를 쓰고 안부를 전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손글씨)가 유행을 타고 있는 것이다. 캘리그라피는 기계적이고 틀에 박힌 느낌을 주는 컴퓨터 및 인쇄활자와는 달리 자유분방할 뿐더러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캘리그라피'는 '아름다운 글씨'라는 뜻이라고 한다.

캘리그라피는 먹물과 붓을 사용하는 점에서는 서예와 같다. 그러나 캘리그라피는 정해진 서법이 없이 컨셉트에 맞는 표현을 하기 때문에 도구도 꼭 붓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나무뿌리나 화장용 브러시를 사용하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독특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특성으로 인해 최근 들어서는 캘리그라피가 영화포스터와 책제목,응원 티셔츠,TV광고,기업홍보물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손맛이 살아있는 손글씨에 관객과 소비자들이 호감을 보이고 있어서다. 상형문자인 한문처럼 한글 역시 얼마든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캘리그라피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한 예로 '춤'이라는 글씨에서 여러 춤사위를 상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캘리그라피는 표현이 자유롭다. 크고 작고,굵고 가늘고,날카롭고 둥근 글씨 속에서 사물의 다양성을 그려낼 수 있을 뿐더러 사람의 따뜻한 감성까지도 맛볼 수 있다. 쓰는 사람의 글꼴에 자신만의 생각과 감각,감성이 배어있기도 한데,캘리그라피가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찬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듯하다.

캘리그라피는 보고 있노라면 여유와 정감이 우러나온다. 종종 어릴 적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시대에 캘리그라피는 '느리게 사는 삶'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우리 한글이 손글씨를 통해 예술성을 더욱 높여 가면서 여러 분야에서 두루두루 친근하게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