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당랑거철(螳螂拒轍)

장석주 < 시인 >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가는데,작은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들었다."허,맹랑한 놈일세.저게 무슨 벌레인고?"

신하가 대답했다." 사마귀라는 벌레지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은 모르는 놈입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용맹스런 용사가 됐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벌레가 상하지 않도록 수레를 돌려가도록 하라."

지난 해 초여름이다.햇빛은 눈부시고 하늘은 푸르렀다.

백로 몇 마리가 노란 송화가루가 떠 있는 논물에 긴 다리를 담그고 서 있고,새로 돋은 나뭇잎들은 바람에 팔랑이고,산에서는 종일 뻐꾹새가 한가롭게 울었다.

서재에 앉아 있는데 밖에서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마당에 나서니 한 남자가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장 선생님 맞으시죠?"

낯선 남자가 제1군 전염병 예방주사를 접종했는지 확인하는 보건복지부 직원처럼 내게 물었다.매우 거침없는 태도였다.

"네.어떻게 오셨어요?" "저 선생님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찾아 왔는데요."

며칠 전 한 일간지에 내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우리는 서재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셨다.

남자는 진주에서 왔다고 한다. 마흔둘이고,혼자 산다고 했다.

신문에 난 내 기사를 읽고 무작정 찾아 왔다고 했다.

입성은 말끔했다.

"저를 찾아온 까닭이 뭔가요?" "불쑥 이런 말씀을 드려도 좋을지 모르겠는데요.

선생님 댁에서 먹고 자고, 가끔 책만 읽게 해준다면 마당에 풀도 깎고 텃밭도 일구고 자질구레한 집안일은 제가 맡아서 할 수 있는데요."

숭고함의 측면에서 몽테뉴와 같이 진화하기로 작정한 듯 말하는 이 낯선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놀랐다.

나는 유령이나 반인반수(伴人伴獸)를 보듯 똥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 나는 그의 신원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다.

우리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러간다.

"시를 쓰나요?" 침묵이 껄끄러워 내가 먼저 입을 연다.

"아니요.

시 읽는 걸 좋아해요." 그가 밝게 웃는다.

그의 웃음은 축사(畜舍) 뒤편에 활짝 핀 영산홍처럼 화사하면서도 소박했다.

"진주에 사는 시인들 중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있나요?" 다시 내가 물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댔지만 내가 모르는 시인이다.

나는 신문(訊問)하듯 묻고,그는 피의자처럼 또박또박 대답한다.

나는 그에게 형제에 대해서도 묻고,이것저것 살아온 얘기도 묻는다.

재워주고 먹여만 주면 책이나 읽으며 텃밭도 일구고 집안일을 돕겠다는 그 남자를 믿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많은 것을 묻고도 나는 어떤 확답도 줄 수 없었다.

남자는 30분쯤 더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고향으로 돌아가느냐고 내가 물으니,그는 당분간 안성에 머물 거라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잠자리와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겠는가고 걱정했더니,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남자의 표정에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가. 그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내 수첩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어 놓고 떠났다.

봉합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외과의사처럼 그가 떠난 뒤 뜬금없이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수레바퀴와 같이 거칠 것 없이 나아가는 이 험한 시절에 동심초와 같이 허망한 인연을 맺으려던 그가 당랑인가,아니면 다가오는 인연을 가로막은 내가 당랑인가,나중에 곰곰 생각해 보고 그가 당랑이고 나는 바퀴라고 결론지었다.

그 반대인가? 내가 당랑이고 그가 바퀴인가.

오호애재(嗚呼哀哉)라,우리는 꽤 멋진 삶을 꾸릴 수도 있었다.

나는 글을 쓰고 그는 거추장스런 집안일을 맡는다. 덕분에 집 안팎은 늘 말끔하다.

잘 정돈된 집안에서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의 부지런함 덕분에 우리 집은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진 꿈의 거주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단 한 가지,그의 순수함을 끝내 믿을 수 없었던 내 불신 때문에 그 근사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했던가. 꿈의 거주지에 살기를 바란다면 꿈의 아들이 되기를 수락해야 한다.

아아,나는 꿈의 아들이 못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