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그늘의 축복'


웃는 얼굴엔들 어찌 그늘이 없으랴

지구도 반쪽의 그늘을 지니고 산다그늘 속 사과나무에 꽃을 피우기 위해

밤 사이 먼 길을 돌아서 온다

세상 모르고 숨을 잣는 어린 것들과근심으로 무거워진 몸들을 싣고

얼마나 빨리 그러나 천천히 자세를 바꾸었는지

비로소 해가 뜬다그늘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해가 뜬다

태양도 제가 만든 그늘을 딛고 길을 나서고

어제는 그늘을 통과하여 오늘을 낳았다밤이라는 그늘의 커다란 날개 속에서

아이들은 쉬지 않고 태어나고

쭈글쭈글 주름을 지탱하기 어렵던 웃음도

얼굴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 편안해 진다 (…)

-이경 '그늘의 축복'부분



늘 빛나는 길은 없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달도 차면 기운다.

지구의 반쪽도 그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으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늘진 반쪽'이 들어설 곳이 없다.

모두가 양지만을 지향하는 탓이다.

양지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무한질주만 있을 뿐이다.

서로 충돌하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그늘의 미학을 잊은 데서 세상의 비극은 시작된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