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 국회 공청회 찬반 논란

"국가 안보와 경제에 중요한 기간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과도한 규제는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SK㈜와 KT&G에 이어 포스코까지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국회 산업자원위원회가 20일 개최한 공청회에서는 기간산업 보호를 위한 이른바 '한국판 엑슨-플로리오 관련 법안' 제정을 놓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판 엑슨-플로리오 관련법은 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투자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안'과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출한 '국가안보에 반하는 외국인투자규제 법안'이다.

공청회에서는 적대적 M&A에 무방비로 노출된 핵심 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인 투자를 관리해야 하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과 과잉 규제는 국내의 반(反)외국기업 정서를 부추겨 외국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외환위기 극복 차원에서 진행됐던 외국인 투자규제 완화 조치로 대부분의 경영권 보호 장치가 사라짐에 따라 주요 기업 상당수가 적대적 M&A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투기자본 규제가 어려워 국내기업의 헐값 매각 등 폐해가 발생하고 경영권에 불안을 느낀 기업들이 자사주를 과도하게 매입하면서 장기투자가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무는 이어 "현재는 투기자본과 투자자본을 구별할 제도적 장치가 거의 전무한 상태"라며 "정상적 투자는 지속적으로 촉진하되 시장을 교란시키고 국가경제에 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투기성 자본은 사전심의를 하는 이원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왕상한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자국 이익의 관점에서 핵심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미국과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투기자본을 견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일본과 한국이 유일하게 적대적 M&A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었지만 일본은 최근 신회사법 개정을 통해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했다"고 소개했다.반면 한충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인 기업은 정부 규제를 가장 큰 리스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 제정에 따라 국가 이미지가 나빠지고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한 교수는 "M&A 방식을 포함한 외국인 투자가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많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에 대한 추가적 규제는 우리의 입지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투자 유치를 주관하는 산업자원부는 '이번 의원 입법안에 대한 제안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윤영선 산자부 외국인투자기획관은 "철강·에너지 등 국가기간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내·외국인 차별 없이 기업의 경영권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간산업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면 방위산업체 지정을 통한 사전허가를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두 개의 법안은 오는 6월 임시국회에 상정된 뒤 법안심사소위,산자위 심의,법사위 심의를 거쳐 본회의 의결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

< 용어풀이 >□ 엑슨-플로리오법=1980년대 미국 기업에 대한 일본과 대만 기업의 인수·합병(M&A) 시도가 잇따르자 미 의회가 이를 막기 위해 1988년 당시 엑슨 상원의원과 플로리오 하원의원의 발의로 제정한 법.

이 법안은 외국인의 투자행위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에게 합병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