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10년의 회환, 되풀이 되나

金秉住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올해로 1997년 환란(換亂)을 맞은 지 10년째가 된다.한국과 함께 위기를 겪은 태국은 일찌감치 객관적으로 심층 분석한 환란보고서를 발간해 교훈을 얻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일부 관료에게만 죄를 덮어씌워 집단적으로 책임을 면하며 자위했다.

97년 당시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금융개혁위원회의 일원이었던 필자는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10년 전 상황이 재연출되고 있지 않나 하는 안타까운 느낌을 받는다.환란 당시나 오늘이나 금융시장개혁의 본질은 금융이용자에게 얼마나 더 편의를 제공하느냐에 있어야 한다.

10년 전에도 금융계에 촘촘하게 설치된 규제들을 풀어 기업·가계들이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었고,이번에도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드는 일보다 자본시장 이용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금융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추진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요즘의 논쟁은 초점에서 벗어나 금융권 간 이권(利權) 싸움으로 흘러 개혁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쉬운 개혁은 없다.

아니 쉬운 것이라면 개혁이 아니다.

어려워야 진정한 개혁이다.개혁에는 관련집단들의 이해관계 재조정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이다.

10년 전 금융개혁 작업에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맞다투고 정치권이 표 계산에 한눈 팔며 대문 빗장 풀린 틈새를 타고 동남아발(發) 환란 태풍이 밀어닥쳐 집 지붕을 날렸다.

이번에는 미국경제 불안,중국경제 과열 조짐이 있지만 당장 대비해야 할 불순한 일기예보는 없고,있어도 주로 해외발이 아니라 국내발일 것으로 보인다.

환란 직후 '위장된 행운'이란 말이 유행했듯이 국제통화기금(IMF) 권유에 따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한국인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덕분에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 정리,기업계의 재무구조 개선 등에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고,금융개혁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 일본보다 앞섰다고 국제적으로 알려지게끔 됐다.

불행하게도 위기 직후 우리가 보인 놀라운 국민적 합의와 초기대응 능력이 'IMF 졸업' 이후 흐트러져 사라지고 다시 예전의 굼뜬 모습으로 돌아가 집단이기주의가 개혁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다.

작년에 일본마저 바꾸는 데 성공한 자본시장개혁법이 좌초되고 있다.

찬반 논의가 증권회사의 소액자금이체 허용에 맞춰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급결제제도 불안을 문제 삼고 있다.

중앙은행이 지급결제제도 고장 가능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10년 전 한국은행법 개정작업 당시 금융개혁위가 '지급결제제도 안전성'을 적어도 금통위 기능 포함에 명시하고자 노력했었다.

은행이 부실화될 때 중앙은행이 개입할 수 있는 '최후의 대부자' 기능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환란 후 은행들이 무더기로 부실화돼 지급 결제망에 대지진이 발생해도 '최후의 대부자' 기능은 잠자고 있었다.

오늘날 외환은행의 모습을 보고 한국은행은 반성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자통법을 둘러싼 고담준론(高談峻論)을 간추리면 한마디로 은행과 증권회사 간의 밥그릇 싸움이다.

거의 무수익에 가까운 금리(0.3%)를 받는 은행 보통예금이 높은 금리(4.0%)에 이끌려 증권회사 CMA로 이동할 길을 터줌으로써 수익의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개혁의 초점을 이용자 편의에 두고 보면 해결의 방향은 분명하다.

은행이 보통예금금리를 상향조정하고 증권회사가 경쟁할 수 없는 서비스 제공,수수료 인하 등에 힘쓰면 된다.

이미 발빠른 은행들은 은행과 증권계좌를 한 통장 거래로 가능하게 하고,평잔에 따른 금리 탄력화,부대 서비스 제공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자금의 대규모 이동이 예방된다.

대표기관(증권 금융)을 통한 증권회사들의 결제망 참여를 막을 합리적 논리는 없어 보인다.세상에 둘도 없는 증권금융회사를 차제에 은행화한다면 금상첨화의 개혁이 될 것이다.

은행이든 증권회사든 고객 서비스 질에 따라 흥하고 망하도록 경쟁을 부추기는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