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부활 원천-제조업의 힘] (下) 불황때도 R&D투자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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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 도요타자동차의 모태인 도요타자동직기 옛 공장 터에 지어진 이 기념관을 지난달 15일 300여명의 도요타 신입사원들이 찾았다. 본관 1층에서 도요타그룹 창시자 도요다 사키치가 1906년 발명한 환상형 직기를 둘러보는 신입사원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신입사원 다카다씨(24)는 "100여년 전에 이런 기계를 발명했다는 게 놀랍다"며 "창시자의 창의와 연구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무라이 코지 산업기술기념관장 대행은 "창업가문인 도요다가(家)의 '모노츠쿠리(최고 제품 만들기)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매년 신입사원을 이 곳에서 연수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일본 제조기업을 방문하면 하나 같이 강조하는 말이 '모노츠쿠리 정신'이다.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것. '장인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들은 10년 불황기에도 다른 건 다 줄여도 연구개발(R&D) 투자비 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R&D를 통한 최고 품질의 추구는 제조회사의 생명선'(와타나베 가츠아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란 철학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에도 쇠퇴하지 않고 결국 되살아난 저력도 여기서 나온다.
◆기계 아닌 '장인의 손'이 경쟁력
도쿄 인근 오타구공단에 가면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란 중소기업이 있다. 종업원이 2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지만 일본의 모노츠쿠리 파워를 상징하는 곳이다. 1947년 설립된 이 공장은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다. 일상 생활용품에서 항공기.로켓 부품까지 주문만 들어오면 다 만든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도 로켓 부품의 정밀도를 올리는 최종 마무리 가공은 이 공장에 맡긴다.놀라운 건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 기기가 아닌 기술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 기타지마 가즈토시 사장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기계보다 정확하다"고 말한다. 생산 현장의 근로자가 혼신을 다해 얻은 손재주와 미세한 감각 등의 노하우는 일본 부품.소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LCD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첨단 제품도 기초는 현장 근로자의 모노츠쿠리에 있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모노츠쿠리 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연초 '모노츠쿠리 기반기술 고도화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작년부터는 총리가 표창하는 '모노츠쿠리 대상'을 만들어 우수 기업을 격려하고 있다.
◆굶어도 내일 위한 R&D에 투자생산현장에서 모노츠쿠리가 가능한 건 일본 기업들의 끊임없는 R&D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기술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손기술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 그런 점에서 일본 기업들이 불황 때도 R&D 투자를 확대해 온 건 평가 받을 만하다. 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R&D 투자를 1~5% 소폭 줄인 것 외엔 지금까지 줄곧 R&D 투자를 늘려왔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지난해엔 R&D 투자를 더 늘렸다. 불어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나눠주는 대신 R&D에 쏟아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25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회사는 R&D에 전년보다 7.4% 많은 11조3304억엔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은 R&D 확대와 함께 연구원도 크게 늘릴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의 56% 기업이 앞으로 5년간 연구원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니와 아오 도쿄대 교수(기술경영학)는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들 사이에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기술 개발'이 필수라는 인식이 다시 퍼져 R&D 투자경쟁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노사는 '한솥밥 먹는 식구'
현장의 모노츠쿠리가 이어진 요인 중 또 하나는 종신고용을 바탕으로 한 일본식 경영이란 분석도 있다. 고도켄지 고도경영연구소장은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현장의 기술 전수도 안 된다"며 "그런 점에서 일본의 종신고용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종신고용은 임직원에게 '한식구 의식'을 심어줘 조직결속력과 노사화합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도요타는 노사가 한 식구란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본사 식당에선 임직원이 밥을 식탁 위의 목제 밥통에서 직접 퍼먹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이 옛 경영방식에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캐논은 종신고용이란 일본식 경영에 미국식 성과주의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경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일자리는 보장하지만 승진과 급여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차등을 둬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회장(캐논 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와 현금 흐름 관리,투명성,비용 관리 등에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지만 고용과 거래업체와의 유대관계에서는 일본식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게 일본 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나고야=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신입사원 다카다씨(24)는 "100여년 전에 이런 기계를 발명했다는 게 놀랍다"며 "창시자의 창의와 연구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무라이 코지 산업기술기념관장 대행은 "창업가문인 도요다가(家)의 '모노츠쿠리(최고 제품 만들기)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매년 신입사원을 이 곳에서 연수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일본 제조기업을 방문하면 하나 같이 강조하는 말이 '모노츠쿠리 정신'이다.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것. '장인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들은 10년 불황기에도 다른 건 다 줄여도 연구개발(R&D) 투자비 만큼은 줄이지 않았다. 'R&D를 통한 최고 품질의 추구는 제조회사의 생명선'(와타나베 가츠아키 도요타자동차 사장)이란 철학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이 장기 불황에도 쇠퇴하지 않고 결국 되살아난 저력도 여기서 나온다.
◆기계 아닌 '장인의 손'이 경쟁력
도쿄 인근 오타구공단에 가면 '기타지마 시보리 제작소'란 중소기업이 있다. 종업원이 20명도 안 되는 작은 공장이지만 일본의 모노츠쿠리 파워를 상징하는 곳이다. 1947년 설립된 이 공장은 알루미늄을 재료로 못 만드는 게 없다. 일상 생활용품에서 항공기.로켓 부품까지 주문만 들어오면 다 만든다. 미국의 항공우주국(NASA)도 로켓 부품의 정밀도를 올리는 최종 마무리 가공은 이 공장에 맡긴다.놀라운 건 대부분의 공정이 자동화 기기가 아닌 기술자들의 손으로 이뤄진다는 것. 기타지마 가즈토시 사장은 "사람 손으로 만드는 게 기계보다 정확하다"고 말한다. 생산 현장의 근로자가 혼신을 다해 얻은 손재주와 미세한 감각 등의 노하우는 일본 부품.소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다. "LCD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첨단 제품도 기초는 현장 근로자의 모노츠쿠리에 있다"(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지적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모노츠쿠리 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연초 '모노츠쿠리 기반기술 고도화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작년부터는 총리가 표창하는 '모노츠쿠리 대상'을 만들어 우수 기업을 격려하고 있다.
◆굶어도 내일 위한 R&D에 투자생산현장에서 모노츠쿠리가 가능한 건 일본 기업들의 끊임없는 R&D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기술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에서 손기술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 그런 점에서 일본 기업들이 불황 때도 R&D 투자를 확대해 온 건 평가 받을 만하다. 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3년간 R&D 투자를 1~5% 소폭 줄인 것 외엔 지금까지 줄곧 R&D 투자를 늘려왔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지난해엔 R&D 투자를 더 늘렸다. 불어난 이익을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으로 나눠주는 대신 R&D에 쏟아붓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요 25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회사는 R&D에 전년보다 7.4% 많은 11조3304억엔을 투자했다.
이들 기업은 R&D 확대와 함께 연구원도 크게 늘릴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의 56% 기업이 앞으로 5년간 연구원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니와 아오 도쿄대 교수(기술경영학)는 "수익성이 개선된 기업들 사이에 장기 성장을 위해선 '신기술 개발'이 필수라는 인식이 다시 퍼져 R&D 투자경쟁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노사는 '한솥밥 먹는 식구'
현장의 모노츠쿠리가 이어진 요인 중 또 하나는 종신고용을 바탕으로 한 일본식 경영이란 분석도 있다. 고도켄지 고도경영연구소장은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하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현장의 기술 전수도 안 된다"며 "그런 점에서 일본의 종신고용은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종신고용은 임직원에게 '한식구 의식'을 심어줘 조직결속력과 노사화합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도요타는 노사가 한 식구란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본사 식당에선 임직원이 밥을 식탁 위의 목제 밥통에서 직접 퍼먹도록 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 기업들이 옛 경영방식에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캐논은 종신고용이란 일본식 경영에 미국식 성과주의를 접목한 '하이브리드 경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일자리는 보장하지만 승진과 급여는 철저하게 실적에 따라 차등을 둬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미타라이 후지오 게이단렌 회장(캐논 회장)은 "일본 기업들은 대차대조표와 현금 흐름 관리,투명성,비용 관리 등에선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였지만 고용과 거래업체와의 유대관계에서는 일본식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며 "그게 일본 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쿄·나고야=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