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단기자금시장 경색 수수방관? ‥ 실세 콜금리는 5.07%

외국은행 외화차입에 대한 규제 우려 등으로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실세 콜금리(5.07%)가 콜금리 목표치(4.5%)를 0.5%포인트 이상 웃도는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통상 0.25%포인트씩 금리를 조정해 온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콜금리 목표치를 두 차례나 올린 것과 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한은은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해 콜금리를 목표치에 맞추려 하기보다 그대로 '방치'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은은 "일시적인 마찰일 뿐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은 "시장의 과민반응일 뿐"콜금리가 연이틀 5%를 넘어서면서 시장에선 한은이 RP(환매조건부채권) 지원을 통해 시장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한은은 "전체적인 시장의 자금이 그렇게 부족한 편이 아니다"며 RP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5%가 넘는 콜금리는 시장의 과잉반응 탓"이라며 "조만간 은행 간 자율조절로 다시 안정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한은은 현재 콜시장에서 자금 부족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곳은 외국은행 지점 몇 군데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들 역시 보유채권을 팔거나 또 다른 방법으로도 자체 조달이 가능한데 그렇게 안 하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이다.

또 지준을 못 맞춘 은행들에는 한은이 2%포인트 이상의 벌칙성 금리를 부과할 것이라든지,다음 달 7일까지 쌓아야 하는 지급준비금이 적수(지준 부족액의 누적 개념)로 100조원에 달한다든지 하는 '근거 없는 소문' 탓에 시장이 지나치게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이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 한은이 돈을 풀게 되면 결국 금융회사들의 잘못된 자금운용 행태에 끌려가게 될 뿐이라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은 특히 그동안 한은의 RP 운영으로 콜금리가 거의 변동성 없이 유지되면서 외은 지점들은 쉽게 콜자금을 빌려 통안증권 등 채권에 투자해 돈을 벌어왔다는 데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이 한은을 믿고 단기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해 온 경향이 있다"며 "궁극적으로 부족한 지준은 한은이 지원해야겠지만 과거처럼 한은이 수시로 개입해 RP 지원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콜금리의 급격한 변동과 단기자금 시장의 혼란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유동성 더 조일 수도

콜금리 급등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4년 만에 5%까지 치솟았지만 한은은 크게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8월까지의 콜금리 목표치 인상 과정에서 CD 금리는 은행 간 과잉 대출경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덜 올랐기 때문에 11월 지준율 인상 후 CD 금리가 다소 가파르게 오르긴 했지만 가계가 감당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콜금리가 안정을 되찾으면 CD 금리도 더 이상 크게 오르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선 단기자금시장의 심리가 크게 위축된 상태라 한은이 유동성 긴축을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CD 금리가 추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준율 인상이 시중 유동성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일부 금통위원들의 비판이 알려지면서 한은이 유동성 긴축을 강화할 것이란 예상에 은행들이 전방위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올 들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주춤한 상태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 '유동성 긴축'이라는 한은의 통화정책 약발이 잘 먹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중소기업대출의 경우 지난달 6조8000억원이나 늘어 한은 통계가 작성된 2000년 12월 이후 사상 최대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여기에다 외은지점들은 단기외채를 잔뜩 끌어다 쓰면서 유동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자금시장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실질적으로 대출을 줄여 유동성 증가세가 확실히 꺾일 때까지는 한은이 '긴축' 고삐를 계속 조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다만 금리가 오르면 환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한은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