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한국엔 벅셔 해서웨이 없는 이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최근 한 특강에서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허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금산(金産)분리 원칙' 완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금산분리 원칙을 지나치게 고집한 탓에 국내 산업자본의 손발이 묶였고 결국 외국 자본의 은행 지배력만 강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규제는 시대 산물이다.

금산분리는 애초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나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꾀하려는 금융규제 차원에서 잉태된 게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와 더불어 대기업 집중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탄생했을 뿐이다.자의적 대출 혹은 부당한 신용 공여를 막자는 취지였지만,기실 무소불위로 세를 불려가는 재벌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규제 근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금산분리를 가장 엄격하게 적용하는 미국에서 찾은 듯하다.

미국에서 1956년 제정된 은행지주회사법은 은행지주회사가 일반기업과 은행을 동시에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은행의 산업자본 지배가 1929년 대공황을 초래한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한 먼 나라의 규제를 들여온 셈이다.

명분과 효용성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재벌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그만큼 곱지 않았다.1982년 은행법에서 동일인 소유제한(8%) 규정을 도입한 데 이어 1994년 법개정을 통해 이마저 4%로 낮췄다.

대기업이 보험 증권 등을 통해 실력발휘를 하자 정부는 1997년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을 만들어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지분 취득(5% 이상)을 막기에 이른다.

정부는 금융지주회사를 세우면 된다고 하지만 삼성 같은 곳이 현 출자구조에서 금융지주회사를 세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산분리 완화가 세계적인 흐름이란 점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금융의 겸업화·개방화·대형화를 막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는 없애는 게 마땅하다.

미국에서조차 은행 외에는 금산분리를 느슨하게 적용하고 있다.

최근 축제 같은 주주총회를 개최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된 워런 버핏의 벅셔 해서웨이도 지주회사다.

직판 자동차보험사인 GEICO를 비롯해 손해보험사와 제조 및 유통회사 등 40여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자회사는 독립 경영을 하되 투자 및 기업인수 등 자본배분 결정은 워런 버핏이 한다.

한국 대기업 총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지분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벅셔 해서웨이 같은 초일류 투자회사가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 시장의 규율을 책임지고 있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도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정경제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대기업 봐주기로 비쳐지는 게 싫어서다.

금융허브의 첩경은 불필요한 규제를 말끔하게 걷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거대 금융그룹이 나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싸워본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경영도 많이 투명해졌다.

때마침 대기업 계열 생보사의 상장이 허용되고 자본시장통합법이 입법단계에 있다.

금산 분리의 멍에를 없애면 은행을 포함한 금융산업 전체가 '점프 업'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서둘러 관련 법이 정비되길 기대해 본다.

이익원 경제부 차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