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댁에 톱 있나요

權赫東 < 과학기술부 기계소재심의관 atom@most.go.kr >

찰흙,색종이,아교풀,8절지,화구,피리,디스켓 등 …. 초등학교의 준비물은 다양하다. 이것으로 뭘 할 것인지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고사리 손으로 열정을 다해 집중할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부모님들의 시름도 잊혀질 수밖에 없다. 중ㆍ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옛날 과거시험과 비슷한 논술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서양 고전으로부터 근대 신소설,최근 운동권의 시(詩)까지 섭렵하면서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적 사고체계를 훈련하고 단련한다. 학생들의 생각이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걸 보면서 부모들은 대견해 한다. 그들의 DNA 속에 각인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선비정신이 어설프게 충족되기 때문이다.

또 수학,과학 등을 공부하며 하얀 실험복을 입고 비이커와 실험관을 다루면서 과학자의 꿈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고층 아파트에서 잘못해 연기(煙氣)나 쿵쿵 소리라도 나면 이웃으로부터 눈총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과제물과 영어 토플시험에 매달리는 대학생에게 벽에 못을 박으라고 하면 그들은 얼마나 잘할까. 드릴로 벽에 구멍을 내 플라스틱 비슷한 것을 끼워 넣고,나사못을 돌려서 못 박는 것은 건설 근로자들만 하는 걸로 아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외국에 유학가면 수학 계산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아주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험은 서구인들에 비해 처진다. 그들은 수학문제는 잘 못 풀어도 실험장치나 뭘 하나 만들라면 아주 잘한다. 왜 그럴까. 어릴적부터 아빠가 차 고치는 것,뚝딱뚝닥 만드는 걸 도와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독일의 학생기숙사 지하에는 목공실이 있어 대패질이나 톱질,못질을 할 수 있다. 스위스 동네에는 기계가공,용접,납땜이 가능한 본격적인 공동 작업장이 있다. 이것이 그들이 세계적인 비교우위를 가지는 정밀공업과 자동차산업의 바탕이다.

인구의 절반이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뭘 만들려고 해도,차를 고치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럴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지하나 주민자치센터에 기계,목공,전기 공작실을 만들면 어떨까. 음악 미술 조기교육도 중요하지만,공작이나 제작에 관심 있는 어린이들에게 적당한 공간을 제공할 수는 없을까. 요즘 애들은 로봇 만들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주말에 공구상가를 한 번 구경해 보자. 그리고 톱,망치,드라이버,공구함을 준비해두면 멋있는 아빠,남편이 될 수 있음에 틀림없다. 손수 뭘 고치거나 만들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된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부를 창출하는 밑천이요 경쟁력이 될 것이다.